클린턴 제의로 3자회담 전격성사-韓.美.日 3國 정상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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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4일 저녁 자카르타에서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韓.美.日 3국 긴급정상회담이 열렸다.국제정치 관례상으로도 찾아보기 힘든3국정상회담은 바로 클린턴미국대통령의 제의로 이뤄졌다.
주제는 북한핵문제였다.구체적으로 말한다면 北-美간 제네바회담합의사항의 철저하고도 완전한 이행을 위한 대책을 강구하고 3국간의 공조를 다지는 모임이었다.
좀더 적나라하게 말한다면 미국의 중간선거에서 패배한 클린턴이외교적 성과를 과시하기 위해 북한핵문제의 해결과정에 일본을 끌어들이려는 회담이었다는 해석도 있다.여기에 우리는 韓.美.日 3국 협력구도가 우리외교의 축을 이루어 왔고 앞 으로도 유지될것이라는 점에서 이 회담을 즉각 수용했다.
미국과 일본의 입장차이는 회담의 성사과정을 살펴보면 그대로 드러난다.
클린턴의 3자회담 제의에 우리측은 물론 찬성했으나 일본의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총리는 발을 빼고 싶어했다.이 때문에3자회담은 이날 오후에야 최종 결정됐다.
그나마도 일본은 3자공식회담의 형식에 반대했다.
이날 저녁 수하르토 인도네시아대통령 주최의 亞太경제협력체(APEC)정상회담 참석자를 위한 만찬석상에서 우연히 얘기가 돼 만나는 일종의「조우(遭遇)」형식을 고집했다.
그러나 미국은 공식회담의 형식을 강조했다.
클린턴으로서는 외교적 성과를 보여줘야할 절박한 입장이었고,정치 기반이 취약한 무라야마의 입장으로서는 본국 의회나 국민들로부터 비난받을 소지가 있는 합의를 해주기가 어렵다는 양국 정상들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 었다.
특히 일본으로서는 북한의 경수로건설에 적극적 역할을 한다는 약속을 3국정상회담에서 해버릴 경우 대북한(對北韓) 수교 내지관계개선에 있어 발목을 잡힐 수 있다는 우려를 한 것으로 풀이된다.경수로 지원등에서 북한에 생색을 낼 수 있 는 카드를 미리 소진하고 싶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러나 우리측으로서는 아주 뜻밖의 성과를 거둘 기회를 잡은 셈이어서 미국측 입장에 동조했다.
물론 이날 오전과 오후의 韓美,韓日 정상회담에서『북한 경수로건설을 지원하기 위한 국제 컨소시엄 구성과 실제 작업과정에서 한국이 중심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동의를 얻어냈지만 개별 정상회담과 합동정상회담에서의 합의사항은 구속력에 있어서 상당한 차이를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3국 정상회담으로 북한이 옴쭉달싹할 수 없도록 국제 그물망은 일단 친 것으로 볼 수 있다.결국 일본은 그다지 원치 않는 3자정상회담에 발을 들여놓지 않을 수 없었고 북한과의 관계개선등에서 한국및 미국과 공조해야 하며 북한 경수 로 건설등에서 국외자의 입장에 서기 어렵게 됐다.미국으로서는 일본의 「코를 꿰는데」성공한 셈이다.
물론 3국정상회담에서는 경수로 문제에 구체적 언급은 없다.
그러나 한승주(韓昇洲)외무장관의 말대로 「북한 경수로 건설지원사업에 있어 한국이 중심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은 실무차원에서 합의됐으며 정상회담은 이를 추인 한 것」이다.
공동발표문중 「미국의 지속적인 역할을 강조」하는 대목은 미국의 對한반도및 동북아에서의 역할을 인정한다는 표현이다.
[자카르타=金斗宇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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