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가술술] ‘듣고 또 듣고’ 영어 동화책 외웠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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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 서울 관악구청 대강당에서 열린 ‘제1회 HCN 어린이 영어 말하기 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영어 애니메이션의 대본으로 연기를 하고 있다. 참가자 중 가장 어린 김민영(왼쪽에서 둘째)양이 우승했다.

김민영(서울 반포초 3)양은 조기 유학 경험이 없다. 단기 스쿨링이나 해외 영어 캠프를 다녀온 적도 없다. 그런 김양이 지난달 24일 카툰네트워크·CNN·YBM시사영어사가 후원하고 HCN이 주최한 ‘제1회 어린이 영어 말하기 대회’에서 1등을 해 서울시교육감상을 받았다. 행사는 영미권 국가 체류 경험 6개월 미만인 초등 3~6학년생을 대상으로 했는데 가장 어린 초등 3학년 김양이 대회 우승을 했다. 한국에서만 영어를 배운 김양의 공부법을 들어봤다. 서울 성원초에서 영어 교과를 담당하고 있는 변혜원 교사가 도움말을 줬다.

 ◆외울 때까지 반복=김양의 영어 공부에 가장 도움이 된 것은 오디오북이다. ‘주니비존스’ 시리즈나 ‘A to Z 미스터리’ 등 흔히 어린이 영어 교재로 인기 있는 책들이다. 어머니 김계형씨는 “민영이는 본 것을 또 보고 또 읽는 스타일”이라며 “재미있는 내용이면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고 듣는다”고 말했다.

 가족끼리 나들이를 갈 때도 차 안에서 오디오북을 틀어 달라고 조를 때가 많다고 한다. 김양은 “영어 동화책엔 웃기는 내용이 많아서 재미있다”며 “혼자 있을 때 심심하면 누가 옆에 있는 것처럼 생각하며 영어로 동화 내용을 들려준다”고 말했다. 여러 권을 읽기보다 재미있는 몇 권의 내용을 통째로 외운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암기력이 좋기 때문에 무엇이든 잘 외우는 편이다. 영어 책을 몽땅 외우는 것을 보면 대견하긴 하지만 혹시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채 기계적으로 암기한 것이 아닐까 의심스럽기도 하다. 의미를 잘 모른 채 성경을 암송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에 대해 변 교사는 “반복 암기는 초등 저학년 영어 공부에서 기본적으로 필요한 학습법”이라며 “영어에서 자주 나오는 단어나 일정한 구문 패턴은 반복적으로 외워 어느 정도 입에 붙어야 한다”고 말했다. 자주 쓰이는 영어 단어와 구문이 암기를 통해 익숙해져야 이를 변형해 다양한 표현법을 익힐 수 있다는 것이다. 영어 노래를 외우는 것과 영어 동화를 암기하는 것은 다르다고 한다. 변 교사는 “영어 노래는 외워도 실제 상황에서 활용하긴 어렵지만 동화책처럼 드라마적 요소가 들어 있는 영어는 외워두면 비슷한 상황에서 실제로 활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양은 “영어 동화가 재미있어서 테이프를 틀어 놓고 잔다”며 “틀어 놓지 않으면 잠이 잘 안 온다”고 말했다. 변 교사는 “늘 일정 시간을 정해서 꾸준히 학습하는 것이 좋다”며 “밥 먹고 세수하는 것처럼 일정 시간의 영어 공부는 습관이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영어로 말 걸기 … 성취감이 중요=변 교사는 “사람은 말한 것의 70%를 기억하고 들은 것은 10%만 기억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평소에 영어로 말을 많이 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수업 시간에 학습 과정으로 말을 주고받는 것보다 개인적 동기를 갖고 하고 싶은 말을 해 보는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이 변 교사의 설명이다.

 학교나 학원에서 접하는 원어민 교사와의 영어 대화는 많은 도움이 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수업 시간이 아닌 실제 상황에서 원어민과 직접 대화를 해 본 개인적 경험이다. 김 양은 “학교 다니기 전에 엄마랑 전철을 탔었는데 한번은 외국 사람이 많이 탔다”며 “그때 엄마가 한번 말 붙여 보라고 해서 처음엔 겁이 났지만 용기를 내서 나이랑 이름도 물어보고 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김양의 이런 개인적 경험이 영어에 자신감을 붙여줬다.

 어머니 김씨는 “영어 학원을 보내고 동화책을 사주는 것 말고 특별히 공부시킨 것은 없다”며 “다만 부모로서 스스로 정한 원칙은 학원을 이리저리 옮겨다니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가 익숙한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놀면서 영어를 배우게 했다는 것이다. 책도 새 책을 자꾸 사주기 보다 책 한 권이라도 깊이 파고들게 했다고 한다. 김씨는 “민영이가 요새 읽기 시작한 영문판 해리포터도 책장을 빨리 넘기지 않는다”며 “재미있는 대화가 나오면 책을 놓고 외우다가 문장이 길면 스스로 간단하게 줄여서 말해보고 하는 식으로 읽는다”고 말했다.

 변 교사는 “또래 아이들이 수준 있는 책을 읽는다고 조바심을 내기보다 쉬운 책이라도 스스로 읽어 내게 하라”며 “혼자 읽어냈다는 성취감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 저학년 영어 학습에선 매우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배노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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