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K 실체 보도'가 대선판 재편 앞당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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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구도의 격변을 가져온 정몽준→이명박, 심대평→이회창, 강금실→정동영 지지선언은 왜 3일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을까.

이들은 2007년 대선 정국을 팔짱 끼고 보던 관망 세력이었다. 직접 대선 경쟁에 뛰어든 심대평 후보도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와 이회창 무소속 후보를 저울질하며 꾸준히 선택의 시기를 가늠하고 있었다.

대선의 뇌관으로 불리는 'BBK 김경준' 사건의 수사 발표 예정일이 5일이어서 이들은 선택을 하더라도 그 전후에 할 것으로 보였다. 정치권에선 그게 '상식'이었다.

그들의 선택이 예상보다 당겨짐에 따라 대선구도는 복잡한 다자구도에서 단순한 3자구도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다.

세 사람은 왜 이른 시기에 선택을 한 것일까. 또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는 왜 이날 그동안 완강한 입장을 접고 후보단일화 문을 열었을까.

한 정치권 인사는 "BBK의 실소유주가 이명박 후보가 아니란 내용이 검찰 안팎에서 나온 게 선택에 영향을 주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BBK의 자본금은 이 후보가 아닌 제3자의 것이라고 주장한 홍종국씨 인터뷰'를 보도한 본지를 거론하는 사람들도 있다. 홍씨는 김경준씨가 'BBK 실소유주=이명박 후보'라는 증거로 제시한 한글 이면계약서의 계약 날짜(2000년 2월 21일) 시점에 자신이 대표로 있는 창투사 e캐피탈이 BBK 주식의 반을 소유하고 있었다고 증언함으로써 이면계약서 진위 논란을 잠재웠다.

홍씨는 이 같은 진술을 검찰에서 했고, 검찰은 계좌추적을 통해 홍씨의 진술을 확인했다는 내용도 본지 기사에 들어 있었다.

홍씨 관련 기사가 난 30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호남 유세에서 '한나라당 후보로의 정권교체'를 주장할 것이란 일부의 예상을 깨고 '이명박 후보를 지지해 달라'고 세 번씩 이름을 거명해 지원을 호소했다.

심대평 국민중심당 후보를 놓고 이명박 후보 쪽과 이회창 후보 쪽이 서로 끌어가려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벌인 것도 30일 이후로 알려졌다.

각 후보 진영의 관계자들은 "중앙일보가 검찰의 수사 내용을 가장 먼저 보도해 정치일정 자체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검찰의 발표가 있기 전 선택을 해야 선택의 가치가 올라갈 것이란 판단을 관련자들이 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명분을 챙기건 몸값을 올리건 이 시기가 가장 적절했다는 얘기다.

'민 컨설팅'의 박성민 대표는 "검찰 발표 전에 대세론의 힘을 보여 주려는 이명박 후보와 실제로 힘을 보탰다는 정몽준 의원의 이해가 일치했다"고 두 사람의 선택 날짜를 분석했다.

숭실대 강원택 교수는 "주요 정치인들과 집권 가능성이 적은 후보들이 내년 총선과 지분 확보를 의식하고 있다"며 "그들이 "BBK 발표 뒤 한쪽으로 판이 쏠리기 전에 자기 공간을 마련하자는 생각이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합종연횡 이면에 대선뿐만 아니라 내년 4월 총선이 배경에 깔렸다는 얘기다.

◆희비 엇갈린 각 진영=정치권에선 기쁨과 안타까움이 교차했다. 자신들의 연대나 단일화엔 크게 기뻐했다. 반면 상대 진영의 소식엔 낙담했다.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정몽준 의원의 지지엔 "천군만마를 얻은 것보다 더한 힘"이라고 한 반면 이회창 후보와 심대평 후보의 연대를 두곤 "지역주의 구태요, 총선용 야합"이라고 비난했다. 박근혜 전 대표도 정 의원의 입당을 두고 "정 의원이 입당해 같이하는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이회창 후보 측도 자신들의 연대는 "정통 참보수 대통합의 첫걸음"이라고 평가했다. 정몽준 의원을 두곤 "정권교체의 훼방꾼"이라고 논평했다.

신당은 양측 모두 비판했다. 김형식 부대변인은 "국제통화기금(IMF) 서명 10주기인 이날 정 의원이 '재벌정당'에 합류했다"며 "구태경제에 대한 회귀 본능이다. 이들에 대한 단죄의 필요성을 부각시킬 뿐"이라고 비난했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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