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영어 진면목 알리고 싶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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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원로 영문학자인 조성식(85·사진) 고려대 명예교수가 셰익스피어(1564∼1616)의 원저를 처음 접한 것은 1943년 경성제대 영문과에 재학할 때였다. 경성제대 영문과 4회 졸업생인 부친(조익준)의 영향을 받아, 집안에서 이미 방대한 양의 영문학 관련 서적을 접하며 자란 그다.

 1988년 고려대를 정년 퇴임하고 나서 그는 90년대 초반부터 다시 셰익스피어를 손에 들었다. 이후 15년을 꼬박 셰익스피어의 희곡 37편 전편과 씨름했고, 그 결실을 최근 선보였다. 출간 직후부터 ‘기념비적 노작’이란 평가가 나오고 있는 『셰익스피어 구문론』 (Shakespeare-Syntax, 전2권, 해누리)이다.

 희곡 전편에 나오는 400년 전 영어 구문을 분석하고 문법적으로 분류한 후, 그 문법에 해당하는 용례들을 인용·번역했다. 총 1696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문학적 측면에서 연구한 작업은 셀 수 없이 많지만, 조 교수처럼 영어학이나 문법의 측면에서 분석한 저서는 이 책이 세계에서 세 번째라고 한다. 조 교수의 저서보다 앞서 나온 것은 영국의 애버트(Abbot)와 독일의 W. 프란쯔(Franz)가 각각 펴낸 『셰익스피어 문법』단 두 권 뿐이라고 조 교수는 말했다. 이 책들은 조 교수가 46년 황해도 해주에서 배를 타고 인천으로 남하할 때 그의 손에 들려있던 세 권의 책 중 두 권의 이름이기도 하다.

  조 교수는 47년 경성대학 예과 전임강사를 시작으로 교직에 들어섰으며, 48년에는 새로 출범한 서울대학교 사범대에서 영어학을 가르쳤고, 58년 고려대 문과대로 옮겨 강의를 계속했다.

 “해방 후 영문학 관련 서적이 전무했어요. 대학에 재직할 때는 교양영어와 영어학의 기초를 놓는 책을 주로 펴냈습니다. 정년 퇴임 후 비로소 젊었을 때부터 생각을 거듭해 오던 저의 필생을 건 계획을 실천에 옮겼습니다. 그런데 그 계획 앞에 어마어마한 작업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경성제대 시절부터 셰익스피어를 읽기 시작했으니 그 내용이 어떤 지는 안봐도 알듯 하건만, 그는 10년에 걸쳐 희곡들을 다시 꼼꼼하게 읽었다. 그는 “37편을 모두 정확하게 읽고, 용례를 수집해 번역한다는 것은 참으로 방대하고, 지루하고, 고된 일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왜 이런 류의 책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그는 “400년 전 셰익스피어가 쓰던 영어와 오늘의 영어가 다르기 때문”이라며 “이같은 영어학적 분석의 바탕 위에서 다양한 문학적 해석도 나올 수 있는 것”이라고 답했다. “한국 독자들이 셰익스피어 영어의 진면목을 몸으로 직접 체험하게 하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목적”이라며 “문학적인 연구와 어학적인 연구가 조화를 이룰 때 완벽한 연구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햄릿』이나 『오셀로』 등은 지금도 사전을 찾지 않으면 힘들 정도로 까다롭다”는 노학자의 말은 젊은 후학들이 좀 더 정확하게 고전의 의미를 되새기도록 하려는 곧은 질책에 다름 아니다.  

글=배영대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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