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고려대를 정년 퇴임하고 나서 그는 90년대 초반부터 다시 셰익스피어를 손에 들었다. 이후 15년을 꼬박 셰익스피어의 희곡 37편 전편과 씨름했고, 그 결실을 최근 선보였다. 출간 직후부터 ‘기념비적 노작’이란 평가가 나오고 있는 『셰익스피어 구문론』 (Shakespeare-Syntax, 전2권, 해누리)이다.
희곡 전편에 나오는 400년 전 영어 구문을 분석하고 문법적으로 분류한 후, 그 문법에 해당하는 용례들을 인용·번역했다. 총 1696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문학적 측면에서 연구한 작업은 셀 수 없이 많지만, 조 교수처럼 영어학이나 문법의 측면에서 분석한 저서는 이 책이 세계에서 세 번째라고 한다. 조 교수의 저서보다 앞서 나온 것은 영국의 애버트(Abbot)와 독일의 W. 프란쯔(Franz)가 각각 펴낸 『셰익스피어 문법』단 두 권 뿐이라고 조 교수는 말했다. 이 책들은 조 교수가 46년 황해도 해주에서 배를 타고 인천으로 남하할 때 그의 손에 들려있던 세 권의 책 중 두 권의 이름이기도 하다.
조 교수는 47년 경성대학 예과 전임강사를 시작으로 교직에 들어섰으며, 48년에는 새로 출범한 서울대학교 사범대에서 영어학을 가르쳤고, 58년 고려대 문과대로 옮겨 강의를 계속했다.
“해방 후 영문학 관련 서적이 전무했어요. 대학에 재직할 때는 교양영어와 영어학의 기초를 놓는 책을 주로 펴냈습니다. 정년 퇴임 후 비로소 젊었을 때부터 생각을 거듭해 오던 저의 필생을 건 계획을 실천에 옮겼습니다. 그런데 그 계획 앞에 어마어마한 작업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경성제대 시절부터 셰익스피어를 읽기 시작했으니 그 내용이 어떤 지는 안봐도 알듯 하건만, 그는 10년에 걸쳐 희곡들을 다시 꼼꼼하게 읽었다. 그는 “37편을 모두 정확하게 읽고, 용례를 수집해 번역한다는 것은 참으로 방대하고, 지루하고, 고된 일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왜 이런 류의 책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그는 “400년 전 셰익스피어가 쓰던 영어와 오늘의 영어가 다르기 때문”이라며 “이같은 영어학적 분석의 바탕 위에서 다양한 문학적 해석도 나올 수 있는 것”이라고 답했다. “한국 독자들이 셰익스피어 영어의 진면목을 몸으로 직접 체험하게 하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목적”이라며 “문학적인 연구와 어학적인 연구가 조화를 이룰 때 완벽한 연구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햄릿』이나 『오셀로』 등은 지금도 사전을 찾지 않으면 힘들 정도로 까다롭다”는 노학자의 말은 젊은 후학들이 좀 더 정확하게 고전의 의미를 되새기도록 하려는 곧은 질책에 다름 아니다.
글=배영대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