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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을 제대로 알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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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미국 시사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매년 세계 100대 정보기술(IT) 기업을 발표하는데, 2004년 세계 1위 기업으로 LG전자를 선정했다. LG전자의 규모(부가가치 기준)는 인구 7300만 명인 에티오피아보다 훨씬 더 크다. 한국의 4대 그룹 경제규모는 인구 8500만 명인 필리핀을 능가한다. 이처럼 국민소득을 창출하는 것은 기업이다. 내년이면 우리 국민총소득이 1000조원으로 1인당 2000만원꼴인데, 앞으로 이를 얼마나 잘 늘리는가는 기업에 달렸다.

포스코는 주식 시가총액이 50조원이 넘는다. 세계 최고 수준의 철강뿐만 아니라 국민 1인당 평균 100만원이 넘는 금융자산도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런 기업이 20개만 더 있다면 국민자산은 1000조원 늘어난다. 우리 주식 시가총액이 올해 1000조원을 넘은 바 있는데, 모두 기업이 만든 것이다. 전 국민의 자산을 늘리는 좋은 방법은 기업을 육성하는 것이다.

땅값은 이미 2005년 2000조원이 넘었다. 아파트 등 빌딩의 시가총액도 1000조원 시대로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1000조원, 2000조원 시대를 맞아 우리의 기업관과 자산관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땅 소유자는 계속 땅값이 오르길 바라겠지만 앞으로 부동산 가격이 1000조원, 2000조원씩 불어나면 큰일이다. 이미 우리 땅값은 세계 수준으로 높은 상태이므로 앞으로도 계속 크게 오른다면 국가경쟁력은 추락할 수밖에 없다. 전 세계적으로 국민 자산구성을 보면 후진국은 부동산, 미국 같은 선진국은 주식 등 금융자산의 비중이 높다. 우리 국민의 자산 구성도 주식 등 금융자산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세계 최대 기업 월마트의 종업원은 190만 명이다. 한국의 공무원 수 95만 명과 비교하면 정확히 2배나 된다. 한국의 4대 그룹과 넓은 의미의 협력 및 관련업체를 포함한 총 종업원은 공무원 수보다 많다. 현재 큰 문제는 상용근로자가 총 취업자의 3분의 1이 조금 넘을 정도로 적다는 점이다. 직장 불안에 떠는 사람이 너무 많다. 더 심각한 것은 취직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수습책으로 공무원 몇 만 명 늘려 일자리 만든다고 하나 전문대 이상 졸업자만 한 해에 57만 명이나 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할 따름이다. 일자리는 기업이 만들어야 한다. 공무원 수의 증가는 세금의 증가다. 또한 일정 수준 이상의 증가는 민간부문 고용을 줄이므로 전체 일자리를 오히려 줄어들게 한다.

세계 최고의 투자가 워런 버핏은 자신이 1억 달러를 벌 때마다 다른 사람들에게 그 두 배의 돈을 벌게 해 준다고 한다. 우리 기업들도 수출을 1억 달러 할 때마다 다른 기업들에 그 두 배에 해당되는 생산을 하게 만든다. 이를 수출 승수(乘數)라고 하는데, 산업의 전후방 연쇄관계로 인한 것이다. 이는 영세기업, 소·중·대기업 예외가 없다. 버핏의 말을 빌리면 포스코는 주가총액을 50조원으로 증가시키는 과정에서 다른 기업들의 가치를 그 두 배나 증가시킨다는 것이다.

주가 1000조원 시대, 더 많은 사람이 더 많은 자산을 갖기 위해서는 기업을 소유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 방법은 주식을 소유하는 것이다. 기업의 소유는 100% 소유와 부분적 소유로 나눌 수 있는데, 후자가 주식을 통한 소유다. 현재 상장회사를 100% 소유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구나 마음에 드는 기업의 주식을 사면 부분적 소유자가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주식을 사 기업의 소유자가 되는 국민이 이후 손해 보지 않고 자산을 잘 늘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총액출자, 순환출자, 수도권 규제 등 규제를 풀어 기업들이 자유롭게 성장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또한 취직 못 하고 배회하거나 생활 불안·직장 불안으로 눈물 흘리는 국민이 없게 해야 한다. 글로벌경쟁시대에는 기업의 지배구조나 조직에 하나의 정답이 없다. 이에 대한 규제도 철폐해야 한다.

송병락 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