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목기자의뮤직@뮤직] 내한 공연한 영국 록밴드 스타세일러 "우린 박찬욱 감독 광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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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영국 록 그룹 ''스타세일러''와 함께 포즈를 취한 박찬욱 감독(오른쪽에서 둘째).

17일 밤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 영국의 유명 록밴드 스타세일러가 ‘버드락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메인 가수)로 나섰다. 그들의 첫 내한 공연이다. 잔뜩 흥이 오른 스타세일러는 4500여 관객을 열광케 했다. 한국말로 ‘감사합니다’ ‘좋아요’ ‘안녕하세요’를 외쳐댔다. 음반사 관계자는 “스타세일러는 원래 무대 매너가 차분한 편인데 이날 공연에서는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 줬다”고 말했다. 스타세일러를 속된 말로 ‘업(UP)’시킨 사람은 영화 ‘올드보이’의 박찬욱 감독이었다. 공연 직전 박 감독이 대기실에 들러 멤버들과 짧은 만남을 했다.

스타세일러는 박 감독의 열혈 팬이다.

특히 드러머 벤 번이 그랬다. 그는 15일 한국에 오자마자 호텔 주변 매장에서 ‘올드보이’ DVD를 샀다. 감독의 사인을 받기 위해서였다.

이들의 인연은 박 감독이 ‘올드보이’ 예고편에 스타세일러의 ‘브링 마이 러브(Bring My Love)’를 사용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스타세일러는 ‘브링 마이 러브’를 예고편에 넣고 싶다는 감독의 요구에 흔쾌히 응했고, 멤버들 또한 박 감독의 영화에 빠지게 됐다.

박 감독이 대기실에 들어서자 멤버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벤 번은 구입해 둔 DVD를 내밀며 감독의 사인을 받았다. 감독도 자신이 가져온 스타세일러 1집 앨범 CD에 멤버들의 사인을 받았다. 감독이 “내 영화에 곡을 쓰게 해 줘서 고맙다”고 하자, 멤버들은 “우리의 곡을 선택해 줘서 오히려 영광”이라고 답했다.

스타세일러는 파격적인 제안도 했다. 내년 4월 발매될 4집의 음원을 박 감독에게 미리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감독이 다음 영화에 우리의 곡을 쓴다면 조건 없이 허락하겠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영화의 컨셉트와 노래가 맞는다면 반드시 쓸 것”이라고 대답했다. 또 “1집 프로듀서 스티븐 오스본이 새 앨범에 참가한다고 하니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스타세일러는 이날 잔뜩 고무된 채 무대에 올랐다. “공연 전 박 감독을 만나서 기뻤다”며 그들을 연결해 준 ‘브링 마이 러브’를 열창했다. 감독도 끝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 스타세일러는 한국을 떠나며 공연 관계자에게 “박 감독의 다음 영화 제목이 ‘스타세일러’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농담을 남겼다. 그리고 그룹 공식 홈페이지에 박 감독과 찍은 사진을 올렸다.

사실 음악과 영화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 소문난 음악광인 박 감독과 스타세일러의 만남은 한 편의 단편영화 같았다. 또 국경을 뛰어넘는 자유의 록음악이었다. 그렇게 세상은 좁아지고 있다.

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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