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임기 초반에 연금 개혁 나서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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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대통령의 지도력은 나라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국민에게 제시하고 그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 낼 때 빛난다. 특히 당장 대중적으로 인기가 없고 반발을 살 우려가 크지만 나라의 장래를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야말로 대통령의 지도력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국민연금과 공무원·군인·사학연금 등 4대 연금의 개혁이 바로 그런 일이다. 이들 연금제도는 지금 바로잡지 않으면 미래 세대에 큰 짐을 지우게 된다. 이미 공무원·군인연금은 재원이 바닥나 적자액을 국고로 메워 주고 있다. 국민연금도 2060년이면 재원이 고갈된다. 현행 연금 구조가 그대로 간다면 미래 세대는 노령자의 연금을 대느라 허리가 휠 수밖에 없다. 국가 재정은 휘청거리고, 세대 간 갈등이 폭발할 게 불을 보듯 훤하다. 한마디로 국가적 재앙이다. 그 시한폭탄의 초침이 지금도 쉼 없이 돌아가고 있다.

차기 대통령은 바로 이 시한폭탄의 초침을 멈춰 세워야 할 중대한 책무를 지고 있다. 연금제도를 하루라도 빨리 뜯어고치지 않으면 시간이 갈수록 바로잡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과거 정권들은 이런 사정을 알면서도 눈앞의 정치적 이해에 눈이 어두워 연금 개혁을 애써 외면했다. 정권을 이어 연금 개혁의 폭탄 돌리기를 해 온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국민연금을 개혁하겠다고 나섰다. 이것만은 노무현 정부가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잘해야 본전이고 잘못하면 표가 날아갈 연금개혁에 정치권이 선뜻 나설 리가 없었다. 정치권은 4년을 끌다가 올 7월에야 가까스로 국민연금법을 손질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연금보험료는 그대로 두고 받을 연금액만 줄여 재원 고갈시기를 고작 13년 늦췄을 뿐이다. 미봉책에 불과하다. 연금 폭탄의 폭발 시한만 뒤로 늦춰졌을 뿐 시한폭탄의 초침은 여전히 째깍거리고 있다.

차기 대통령은 가장 힘이 넘치고 개혁 의지가 충만한 취임 초부터 바로 이 지난한 과제를 밀어붙이기 바란다. 미래 세대의 짐을 덜고 20, 30년 후의 나라 재정을 튼튼히 하기 위해서는 지금 세대가 고통을 나눠야 한다고 당당히 국민과 정치권을 설득해야 한다. 연금이 용돈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도 고쳐야 한다.

국민연금의 개혁에 앞서 더욱 시급한 과제는 이미 국고에 의존하고 있는 공무원·군인연금의 개혁이다. 노무현 정부는 올 상반기 중 공무원 연금을 개혁하겠다고 했지만 아직도 감감 무소식이다. 세금으로 메워 주는 공무원·군인연금을 그냥 놔두고서는 국민연금 개혁을 위해 고통을 감수하자고 국민에게 말할 명분이 없다.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와 지도력이 없이는 막강한 이익집단인 공무원과 군인의 반발을 이겨내고 연금 개혁을 이룰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