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같은 소설 픽션같은 논픽션 뉴저널리즘 바람 다시분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역사적 사실을 단순히 기록하는데 만족하지 않고 저자 본인의 문학적 상상력과 표현력을 적절히 가미하는 표현기법인 뉴저널리즘이 미국.폴란드.영국 등 세계문단에서 지난 60년대에 이어 또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현재의 뉴저널리즘과 60년대의 그것과의 차이점을 굳이 따진다면 지금의 것이 문학성에 보다 더 치중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있다.미국에서 논픽션부문 베스트셀러 자리를 13주째 지키고 있는 보브 우드워드의 『의제』(The Agenda )와 에드워드케네디 상원의원의 일대기를 쓴 전기작가 조 맥기니스의 『막내』(The Last Brother),영국문단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V S 나이폴의 『세상의 길』(A Way in the World),폴란드 최고의 작가 리샤르 트 카푸스친스키의 『절대권』(Imperium)등이 최근에 발표된 대표적인 뉴저널리즘 작품들. 이 작품들의 특징은 기록성이 강하면서도 대화체 등 문학적 요소 또한 강해 다큐멘터리인지 문학인지 장르 구분이 애매하다는 점에서 한마디로 픽션과 논픽션의 벽이 허물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워터게이트사건을 파헤친 저널리스트며 작가인 보브 우드워드가 클린턴대통령의 백악관을 둘러싼 비사(秘史)를 적은 『의제』의 경우 논픽션으로 구분되었으나 역사기록이 갖추어야 할 정보출처가전혀 공개되지 않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세상의 길』은 저자 나이폴이 어릴적 카리브해의 아름다운 추억을 담은 회고록 형식인데도 소설로 통하고 있으며 카푸스친스키의 『절대권』 역시 지난 89년부터 91년 사이 붕괴 직전의 소련 여행경험을 적은 것인데 소설로 분류되고 있다 .
본래 뉴저널리즘은 지난 50년대 언론에서 먼저 시도된 것으로사건을 속보(速報)주의 원칙에 따라 단편적으로 보도하던 종래의관행에서 벗어나 사건이나 취재대상을 밀착 취재해 문학적인 표현을 가미,독자들에게 사건 등을 보다 생생하게 전달하자는 의도에서 나온 기법이다.노먼 메일러 같은 작가들이 60년대에 그 기법을 문학에 도입해 하나의 장르로 확립시켰다.메일러는 대표작인『밤의 군인들』(Armies of the Night)에 「소설로서의 역사,역사로서의 소설」이 라는 부제(副題)까지 달 정도로 뉴저널리즘 기법에 열을 올렸다.
문학전문가들은 30년전에 성행하던 표현기법이 지금에 와서 다시 인기를 얻는데 대해 다양한 분석을 내놓고 있다.
작가들이 표현기법을 넓혀 역사적 기록이 갖는 완벽성과 저널리즘이 갖는 同시대성을 동시에 확보하려는 시도라든가,냉전체제가 붕괴되면서 문단에도 형식이나 틀에 묶이는 엄숙주의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라는 등의 분석이 그것이다.
『세상의 길』을 쓴 나이폴 자신은 문체변화에 대해『30년 동안 창작활동에서 매번 같은 스타일의 작품을 발표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면서 『그동안 축적된 인생 경험을 소화하기 위해서도 스타일의 변화가 불가피했다』고 설명한다.그는 주변인물을 그릴 때도 독자들의 상상력을 최대한 자극하기 위해 가공의 인물을내세운다고 밝히고 있다.
한편으로는 부정적인 시각도 만만찮다.아무리 표현기법의 확대라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면 후손에게 왜곡된 역사를 물려줄 수도 있다는 우려다.
「백악관의 비밀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의제』의 경우 세계정치의 심장부에서 일어난 비밀 이야기를 적은 것인데도 정보의 출처를 거의 밝히지 않고 있다.클린턴의 출마에 누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가를 밝히는 부분은 대통령부부가 침실에 서 나누는 대화로 처리되고 있는데 과거의 논픽션 작품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표현방법임에 틀림없다.
『나는 당신이 꼭 대통령에 출마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진정으로 그렇게 생각하오?』『그럼요.』『어째서 그렇게 믿게 되었소?』 이 대화는 모두 등장인물의 입을 빌리고 있지만 사실은 저자 우드워드의 상상력에서 나온 것이다.
이 책에는 대통령부부 어느 한편도 정보출처로 거론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저자가 직접 들었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저자가 아무리 노련한 저널리스트라 해도 대통령의 침실대화까지야 엿들을 수없는 노릇 아닌가.대화도 힐러리여사가 적극적으로 나서 남편을 대통령으로 밀었던 것으로 끌고 가고 있다.
이처럼 이 책의 표현기법이 거의 소설에 가까운데도 내용의 진실 여부는 앞으로 40년 동안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우드워드가 이 책을 쓰는데 이용했던 자료가 몽땅 예일대학도서관에 봉인된 상태로 보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나온 뉴저널리즘 작품중에서 특히 기록성이 강한 『의제』는 앞으로 세계문단에서 많은 논란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鄭命鎭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