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포기한 리비아·파키스탄 "미국 核감시망에 두손 들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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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는 최근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파키스탄은 농축우라늄 기술을 무단으로 수출한 자국의 핵무기 개발 영웅을 범죄자로 몰아붙였다. 해외 언론에 따르면 이 두 가지 중요한 변화의 뒤에는 미국의 집요한 노력이 있었다.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리비아=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지난해 12월 19일 전격적으로 "핵개발을 완전히 포기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에 앞서 미 중앙정보국(CIA)과 영국의 해외정보국(MI6), 그리고 리비아 정보기관은 15개월간 막후 흥정을 벌여야 했다.

파이낸셜 타임스에 따르면 리비아의 핵포기는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카다피에게 보낸 편지로 시작됐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앞서 2002년 9월 블레어는 카다피에게 핵개발을 포기하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카다피는 답장에서 "왜 나만 지목하는가"라고 지적했다. 이스라엘의 핵무기는 내버려둔 채 왜 자신만 문제삼느냐는 지적이었다. 그러나 카다피는 편지 말미에 "외무장관에게 이 문제를 협의할 것을 지시했다"고 말했다. 돌파구가 열린 셈이다.

리비아.영국.미국의 정보기관 인사 6명은 런던 중심가의 한 클럽 밀실에서 비밀접촉을 시작했다. 리비아에서는 정보 총책임자인 무사쿠사 국장, CIA의 중동담당관, 그리고 영국의 MI6가 참가했다. 그러나 '핵사찰'을 둘러싼 입장차로 이 비밀회동은 좀처럼 진척되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해 9월 CIA는 핵개발용 원심분리기 부품을 싣고 리비아로 향하던 화물선을 나포했다. 사건이 발생하자 카다피는 큰 충격을 받았다. 아무리 미국을 속이려 해도 결국은 'CIA의 손바닥' 위에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결국 카다피가 한발 물러섰다. 이에 따라 CIA요원 수십명이 리비아를 방문, 10여개 핵시설을 둘러보았다.

◇파키스탄=파키스탄의 압둘 카디르 칸 박사가 25년간 운영해 온 '칸(Kahn)리서치연구소'는 핵무기의 수퍼마켓이었다. 북한과 리비아.이란뿐 아니라 시리아와 사우디아라비아까지 고객 리스트에 올라 있다.

1998년 5월 28일 칸 박사가 사막에서 공개적인 핵폭발 실험에 성공하자 미국은 즉각 경제제재에 들어갔고 감시망을 강화했다. 칸의 해외여행은 물론 국제통화와 해외 은행 계좌까지 감시했다.

2001년 9.11 테러로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미국은 무샤라프 대통령에게 압력을 넣어 칸을 연구소장직에서 물러나게 했다. 그러나 칸의 실질적인 영향력은 거의 줄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미국과 영국 정보기관에 물증이 잡혔다. 리비아로 향하던 선박에서 칸 박사가 팔아넘기는 핵무기 부품이 나왔다. 미국 리처드 아미티지 국무부 차관보가 10여년간 축적해 온 각종 파일을 들고 파키스탄 대통령궁을 찾았다. 파키스탄 관계자가 "가슴이 떨릴 정도"라고 표현한 방대한 증거들에 무샤라프가 손을 들었다. 곧바로 진상조사 작업에 들어갔다. 11월 칸 박사에 대한 가택연금이 시작됐다.

마지막 일격은 딕 체니 부통령이 날렸다. 체니는 지난달 다보스 포럼에 참석한 자리에서 무샤라프 대통령을 만나 "당장 조치를 취하라"고 요구했다. 연초 리비아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에서 칸 박사의 그간 행적이 통째로 드러났기 때문에 체니의 요구는 확정판결과 같았다. 파키스탄의 영웅은 대통령의 사면을 받았지만 더는 활동이 불가능해 보인다.

최원기 기자, 런던=오병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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