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비서실>192.안무혁 안기부장 사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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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정치판에서 선거는 생명을 건 大會戰이다.그런데 6共의 첫 작품으로 야심을 담아 공천한 선량후보들은 88년 4.26총선에서형편없이 나가 떨어졌다.과반의석을 호언하던 여당은 전체의석의 38.8%를 얻는데 그쳤다.6共 악몽의 시작이었 다.
당연히 이같은 엄청난 실패에 따른 책임론이 제기되지 않을수 없었다. 선거가 끝난뒤 당의 蔡汶植대표와 안기부의 安武赫부장이자리를 물러났으며,崔秉烈정무수석과 朴哲彦정책보좌관은 신상에 변동이 없었다.외형상 당대표와 안기부장이 선거패배의 문책을 받은듯하다.그러나 실제로는 대통령으로부터 문책을 받은 사람 은 아무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거가 끝나고 개표가 시작된 26일 밤.崔수석은 청와대 집무실에서 개표상황을 TV로 시청하고 있었다.새벽녘 그는 조용히 집무실을 나섰다.이미 마음속으로는 자진사퇴를 결심했다.그는 집에 도착해 잠들자마자 청와대 직통전화가 울려대는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오전6시.盧대통령이었다.
『이렇게 된 것도 다 하늘의 뜻으로 알고 겸허히 받아들입시다.』 가장 상심해야할 대통령의 목소리는 오히려 차분했다.
다음날 오전9시 崔수석은 사표를 준비해 洪性澈비서실장과 함께대통령 집무실에 들어갔다.『죄송합니다』라는 사과의 말에 盧대통령은 예의 미소를 머금으며 『밤들 새우셨겠군요.고생 많았습니다』고 위로한 뒤「전부 하늘의 뜻」임을 재강조했다 .「하늘의 뜻」이기에 어느 누구도 문책받지 않았으며,崔수석의 사표는 반려됐다. 朴哲彦정책보좌관이 사표를 제출했다는 얘기는 없다.상식적으로 짐작해볼때 당시 朴보좌관의 역할은 숨겨져 있었기에 그가 굳이 사표를 낼 이유는 없었다고 보인다.
기본적으로 5共 사람인 蔡汶植대표는 일찌감치 당대표자리가 자신의 몫이 아님을 알고 사의를 표명했다.6共 핵심중 누구하나 그의 퇴진을 말릴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安부장의 퇴진은 의미가 각별하다.安부장이 사표를 제출한 것은 朴보좌관과의 갈등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安부장은 당당한 6共의 창업공신이다.그는 5共 마지막 안기부장이지만 정권 재창출이라는 대임을 맡아 무사히 수행함으로써 6共 개국공신이 되었다.
이어 6共 초대 안기부장으로 자리를 굳힌 상황이었기에 다음 대임인 올림픽을 치르기까지 그의 자리는 확고부동해 보였다.
그런데 민정당에 대한 문책성 당직개편이 있었던 5월2일 安부장은 사표를 품에 안고 청와대로 향했다.盧대통령 취임후 70일간 쌓였던 얘기를 조목조목 털어놓았다.
육사 14기 하나회출신인 安부장은 일찍이 盧泰愚 민정당대표가全斗煥대통령으로부터 정식으로 후계지명을 받기도 전인 88년초,육사출신 핵심인사들이 盧대표를 불러다가「대권후보로 밀어줄테니 대권을 잡고나서 친인척문제를 확실히 다스려라」고 다짐을 받던 자리에 직접 참석했던 인물.당시 그는 국세청장이었다.물론 이때盧대표는 시저의 일화를 들먹이며「철저한 친인척관리」를 다짐했었다.아내가 부정을 의심받자 아내를 버린 시저가「소문만 듣고 그럴수 있느냐」는 주위의 비난에「세 상사람들의 의심을 받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시저의 아내가 될 자격이 없다」고 대답했다는 일화다. 安부장은 이같은 다짐에도 불구하고 날로 심각해져만 가는 친인척,처고종사촌동생인 朴보좌관의 인사전횡을 지적했다.『이 나라가 전부 자기 것인양 행세하고 있습니다』는 정도로까지 朴보좌관의 전횡을 강하게 성토한 安부장은 朴보좌관의 문책을 건의했다. 盧대통령은 항상 그렇게해왔듯,또 이후에도 한동안 그러하듯『(朴보좌관이)어려서 그런 것이니까 그러지말고 잘 좀 키워달라』는 식으로 朴보좌관을 감싸안았다.
그럼에도 安부장이 朴보좌관의 문책을 강하게 건의하자 盧대통령은 朴보좌관의 능력을 강조하면서『보고내용이 안기부보다 더 정확하다』고 말했다.安부장은 이 대목에서 감정이 폭발했다.그는『그러면 朴보좌관 말대로 하십시오.내가 관두겠습니다』 며 사표를 내밀었다.그리고는 바로 뒤돌아서 나왔다.
『安부장 왜 이러는거요,安부장….安武赫!』 盧대통령이 갑작스런 安부장의 사표제출을 만류하려 했으나 그는 벌써 청와대 본관을 나서고 있었다.盧대통령은 바로 崔정무수석에게 전화를 해 전후사정을 설명한뒤 安부장을 찾을 것을 지시했다.
그러나 安부장은 대통령의 부름에도 나타나지 않았다.5.16직후 金鍾泌씨가 권력의 상징 중앙정보부를 창설한 이래 정보책임자인 안기부장이 절대권력자에게 항의해 사표를 제출한 것은 이때가처음이자 마지막이었으며,정보책임자의 자리가 5일 간이나 공석으로 있었던 일도 전무후무한 일이었다.결국 5월7일 법무장관출신인 裵命仁씨가 안기부장으로 임명됐다.
安부장이 朴보좌관의 행태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기 시작한것은 이미 그가 안기부장으로 취임하자마자인 87년 5월부터였다.안기부장으로 취임한 그는 안기부조직이 당시 안기부장특별보좌관으로 있던 朴哲彦에 의해 이원화돼 조직이 제기능 을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간단히 말해 朴특보가 거느리고 있는 연구실팀에 모든 국내 주요 정보가 집중되는등 朴특보팀이 안기부내의 안기부가 돼있는 바람에 나머지 부서가 겉돌고 있었다.
그래서 安부장은 취임 직후 실.국장회의를 소집,『앞으로 朴특보에게 가는 모든 정보를 나에게 직접 보고하라.필요하면 盧대표에게 내가 직접 보고하겠다』고 엄명을 내렸다.
이후 대통령선거과정에서도 安부장은 朴특보와 여러차례 부딪쳤다.선거운동 전반을 컨트롤하던 安부장과 항상 따로 움직이고자했던사조직 총괄 朴특보간에 충돌은 불가피했다.
그러나 당시만해도 安부장이 확실한 상급자였고 안기부장으로도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었기에 朴특보는 盧후보의 꾸중을 듣고安부장에게 별도로 사과하기도 했다.한마디로 싸움이 안됐다.
그런데 대통령선거가 끝나고부터 얘기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朴특보는 盧당선자의 가슴 한가운데 확실히「1등 공신」으로 자리잡았고,당연히 朴특보의 얘기는 안기부장의 말보다 더 영향력이있었다.이같은 힘의 역전이 결정적으로 드러난 것 이 바로 앞서상술했던 공천과정이었던 것이다.
安부장과 朴특보의 또다른 갈등 포인트는 對北관계의 주도권문제였다.알려졌다시피 朴특보는 5共 張世東부장 밑에서 북한과의 밀사역을 맡아 85년 張부장의 평양방문과 金日成면담을 성사시키기도 했다.그래서 그는 6共 들어서도 對北정책을 장 악하고자 했다. 그런데 문제는 朴특보가 정치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음지인 안기부를 떠나 양지인 청와대와 국회로 진출했다는 점이다.對北문제는 음지인 안기부에서 은밀하게 추진해온 것이 관례였다.
자연히 개인차원의 업무지속성을 주장하는 朴특보와 조직차원의 업무지속성을 주장하는 안기부장 사이에 갈등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청와대 별관에 密室 朴보좌관은 청와대 비서실에 입성하자마자 동별관 3층 자신의 집무실 맞은편에 방음장치를 한밀실을 만들었다.對北업무의 상징인 평양과의 직통전화(핫라인)를안기부에서 옮겨오기 위한 작업이었다.
朴보좌관의 주장은 핫라인이 자신과 북한 韓時海외교부 부부장이서명해 만들어진 것이기에 자신이 청와대로 옮겨가면서 가져갈 수있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안기부가 가만 있을리 없었다.安부장은 안기부 고유업무로서 對北문제의 특수성.효율성을 강조하면서 朴보좌관의 주장에 대해서도『朴哲彦 개인이 아니라 안기부장 특별보좌관 朴哲彦이라는안기부조직원으로서 직통전화개설에 서명하고 또 지 금까지 對北업무를 맡아왔지만 이제 안기부를 떠나면 對北업무에서 손을 떼야한다』고 반박했다.
그래서 이뤄진 어정쩡한 타협안이「직통전화는 남산 안기부에 그냥 남겨두고 업무는 朴보좌관이 계속 맡는다」는 내용이었다.물론安부장도 직통전화를 사용했지만 이는 대개 의전적인 차원이었고 실제 對北업무는 朴보좌관이 주도했다.
그러니 북한에서 전화가 오면 안기부에서는『잠시후 다시 연락해달라』고 말하고는 부랴부랴 朴보좌관을 찾아야했고,朴보좌관은 또만사를 제쳐두고 남산으로 달려와야하는 불편함이 생겼다.
결국 朴보좌관은 安부장이 물러나자마자 당초 의도대로 직통전화를 청와대로 끌어와 이같은 불편함을 없애버렸다.安부장의 사퇴는곧 朴보좌관의 헤게모니 장악을 의미했다.
이같은 권력 심장부의 역학변화는 권력史의 상례다.쉽게말해 창업공신의 역할은 창업으로 끝나고 수성은 새로운 측근그룹에 의해수행된다는 것이다.
安부장의 퇴진은 수성을 준비하는 측근에 의해 배제되어가는 창업공신,특히 군출신의 운명을 예고한 신호였던 셈이다.
그의 뒤를 이어 군출신 창업공신인 鄭鎬溶의원.金容甲총무처장관등이 권력핵심에서 탈락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吳炳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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