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억지춘향 추석캠페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우리나라의 경쟁력이 泰國이나 칠레보다도 못하다는 우울한「94년 세계 경쟁력 보고서」가 전해진 7일 果川 정부종합 2청사에선 그 보고서만큼이나 답답한 행사가 벌어졌다.
상공자원부가 주관한 이른바「건전한 추석절 보내기 운동 추진회의」인데 각 경제단체와 정부 투자.출연기관,공단등 44개 기관에서 부회장.전무.감사 등이 참석해 40분동안「훈시」를 들어야했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21일 상공자원부 직원들이 나와근무할 예정이니 기업들도 추석연휴 늘리기를 하지 말라는 당부까지 있었다.회의는 이번만이 아니었다.지난 5일에는 그 바쁜 시중.국책 은행장들이 다 모여 선물 주고 받지 말기를 결의했다.
6일에는 29개 생명보험사 사장들이 모여 역시 같은 내용을 결의했고 지난 3일에는 32개 증권사의 감사가 급히 모이기도 했다. 이같은 모임은 건전한 명절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특단의대책」이 강구돼야 한다는 정부의 의지에 따라 열린 것이다.
물론 경기가 빠른 속도로 살아나고 상품권 발행이 자유화된 판에 너도나도 지나친 선물로 과소비가 번지면 더욱 심각한 물가불안 등의 문제가 있으리란 정부측 시각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과소비 자제나 건전한 추석 보내기 같은 의식과 소비의선진화가 이같이 바쁜 사람들을 불러 모아 놓고 강요하는 우격다짐식 결의대회를 통해 이뤄지리라고 생각한다면 아무래도「수준 낮은」일이다.
어렵게 생각할 것도 없이 당장 집집마다 현관 앞에 지키고 서서 선물 주고 받는 것을 단속할 수도 없을 것이다.
심지어 지난 2일 총리실 주재로 열린 정부부처 감사관 회의에선『전직 장.차관에게 인사 드리러 가는 것도 안되느냐』는 질문에『전직 장관이 불우이웃이냐』는 유권해석(?)까지 나왔다고 한참석자는 우스갯소리처럼 전했다.
명절을 맞아 유 대관계도 돈독히 하고 밀린 납품대금이나 임금을 받으러 가면서 선물들고 가는 것도 단속대상이 되느냐는 질문도 나왔다고 한다.
오죽하면 정부가 이런 유치하기까지 한 유권해석을 내렸겠느냐는점을 십분 감안하더라도 건전한 명절분위기를 유도하자는 방법이 이래서는 곤란하다.
「경제의 民度」를 지나치게 낮게 보는 정부의 시각이 건전한 추석 보내기 정책에 배어있는 것이라면,바로 그런 점 때문에 우리의 국가 경쟁력이 泰國보다도 더 낮게 평가되는 것은 아닐까.
〈梁在燦경제부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