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빈문화시평>운동권문화 청산 방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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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민주사회가 건강하게 발전하려면 다수의 중심 보수세력이 제자리를 확보하면서 제 목소리를 내야 하고,소수의 개혁세력이 참신성을 유지해야만 한다.그러나 主思派的 관점과 주장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운동권 세력도 정말 문제지만 이들이 만들어놓은 운동권 문화의 잔재를 청산하고 정리하는 방식 또한 너무 조급하고 미숙해 보여 불안하다.
소설『太白山脈』이 검찰에 송치되면서 利敵性 재판을 받기에 이르렀고 곧이어 상영될 영화에 대해선 우익단체의 협박편지까지 공공연히 나돌았다.군사정권의 탄압으로 30년 가까이 고국을 등졌던 세계적 음악가 尹伊桑의 귀국도 불투명해졌고,군 사정권하에서反체제 활동을 벌였던 민예총에 대한 문예진흥원 지원을 철회하라는 소리가 보수진영 쪽에서 나오고 있다.
사안 하나 하나를 면밀히 따져보면 이적성 여부에 저촉될 부분도 분명 있을 것이고,현재 다시는 좌파 성향의 문화 현상이 만연돼서는 안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그러나지난 시대의 병폐를 해소하고 새 문화의 틀을 만 들어야 할 때인데도 지난 문화의 잔재를 처리하는 방식이 너무 조급하고 인민재판식 여론공세로 빠질 위험성마저 있어 보인다.문제의 작품이나예술가 모두 지난 권위주의시절 우리와 함께 살아온 우리 시대 아픔이고 상처라는 사실은 잊어버리고 그 상처를 다시 후비고 덧나게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나 자신『太白山脈』을 읽으면서 두번 놀랐다.처음엔 지금껏 알아온 작가 趙廷來가 아닌 전혀 새로운 작가의 탄생을 보는 놀라움이었고,소설이 막바지에 이르러 묘하게도 독자를 배신하며 親北的 결론으로 빠져들 때 두번 놀랐다.평론가 金炳翼 이 지적했듯이 소설이 빨치산이나 左派들은 한결같이 건강하고 정당한 긍정적인물로 묘사하고,右派는 퇴폐적이고 타락한 인물로 묘사하고 있으며 주인공 김범우의 중립적 지식인 자세가 아무런 설득력 없이 공산주의자로 전향하는 無理를 보이고 있다.민족문학 시각에서 소설을 시작했던 작가가 86년 이후 당시 운동권의 깊은 영향을 받으면서 時流에 편승했다는 인상을 받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소설일 뿐이다.
음악가 尹伊桑이 동백림사건에 연루되어 말못할 고초를 겪고 국적까지 獨逸로 바꾸어 北을 드나들었고 北에는 윤이상음악연구소까지 있다는 사실을 남쪽 사람들도 대체로 알고 있다.늙고 병든 이 세계적 음악가가 首丘初心으로 남쪽 고향땅을 밟 아보려는데 그게 막히고 있다.국제화 시대의 국제적 음악가의 간절한 귀국을과거만을 캐물어 막고 있다.물론 그가 자신의 지난 親北활동에 대해선 입 다물고 남쪽 정부의 사과나 열렬한 환영만 바란다는 것도 말이 안되는 일이지만,지난 정부 의 잘못에 대해서는 입 다물고 항복문서를 꼭 받아야만 입국시키겠다는 정부 입장도 너무옹색하다.
근 30년간 군사정권 아래에서 싫든 좋든 운동권 문화라는게 형성되었다.문화란 삶의 足跡이고 그 족적을 그린 게 예술이다.
지난 우리 삶의 족적을 보면서 이제 그건 나의 죄가 아닌 너의죄일 뿐이라고 몰아붙일 수 있는가.게다가 관련 인물들 모두가 문화예술인이다.소설과 음악을 재판에 올려 利敵性을 하나씩 따져본들 그 결과가 어찌될 것인가.10년 가까이 잘 팔아온 베스트셀러를 어느날 재판해 容共소설로 규정,그 작가를 감옥에 보내고세계적 음악가의 고국방문을 거부 하는 그런 사회를 과연 온당한자유민주주의 체제라고 할 수 있겠는가.
어두웠던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 시대로 접어드는 시점에서 보수 중심세력의 화합과 관용의 자세가 절실히 요청된다.이미 우리는 화합과 관용의 자세로 운동권 문화를 처리한 선례를 全敎組교사 복직에서 잘 보았다.89년사태 당시 그들의 불 법성과 교육황폐화에 대한 책임을 비판하고 따졌지만 문민정부가 들어섰을 때전교조 문제를 그냥 두고 교육문제를 풀어갈 수 없다고 누구나 생각했다.그래서 前非와 前歷을 묻지 않고 전교조 불가입에 동그라미 하나만 그리면 복직을 허용했다 .
***和合과 관용이 절실 지난날 잘못을 뉘우치라고 윽박지르지않았다.동그라미 하나 그리고 쑥스러운 표정 지으며 다시 교단에섬으로써 지난날 감정의 앙금을 서로 가라앉혔다.1년이 지난 지금 학교는 아무 문제가 없다.자유민주 체제의 우월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보수 중심세력의 건강한 수용 능력과 균형감각,그리고 포용력이 바로 이 사회를 이끄는 힘의 원천인 것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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