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카사블랑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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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카사블랑카』의 남자 주인공 릭 블레인으로 본디 캐스팅됐던 배우는 갱들하고도 관계가 있었다고 알려진 조지 래프트였는데 그는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거절했고,그래서 험프리 보가트가 대신 그 역을 맡아 인상깊은 대표작을 만들게 되었다.
조지 래프트는 『뜨거운 것이 좋아』에서 토니 커티스와 잭 레먼을 추적하는 갱 두목으로 출연한 배우이고 영화 『벅시』에서 워런 베이티의 친구인 영화배우가 바로 조지 래프트다.
모린 오하라가 칼을 휘두르는 바다의 여인노릇을 하는 동안 말을 잘 타고 총도 잘 쏘는 서부의 여걸역을 단골로 맡았던 바버라 스탠윅은 『카사블랑카』의 여주인공 일사 라즐로로 출연해 달라는 교섭을 받고는 역시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아 거절했고,그래서 할리우드로 건너온지 얼마 안되는 신인 스웨덴 여배우 잉그릿 버그만이 그 역을 대신 맡았다.물론 『카사블랑카』는 버그만에게도 가장 두드러진 작품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그것도 모자란다는 듯 마이클 커티스 감독은 촬영이 거의 다 끝날때가지도 『카사블랑카』의 마지막 장면을 어떻게 해야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해 일사가 레지스탕스 지도자인 남편 빅토르 라즐로(폴 헨리드)만 비행기에 태워 보내고 릭과 뒤에 남는 장면과일사를 남편과 함께 비행기에 태워보내고 릭만 안개낀 카사블랑카비행장에 혼자 남는 장면을 둘 다 찍어 보기로 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사랑하는 여인을 남편과 함께 비행기에 태워 보내고 험프리 보가트만 사나이답게 뒤에 홀로 남는 장면을 먼저찍어보니 마음에 들어 그냥 그렇게 영화를 끝내기로 했단다.
제2차 세계대전중에 제3제국의 손아귀를 벗어나려고 카사블랑카로 모여들어 탈출을 위한 비자를 얻으려고 한없이 기다리는 망명자. 도피자들과 로레인의 십자가를 지니고 다니는 레지스탕스와 범죄자들의 소굴 카페 아메리캥,그 절박한 분위기속 에서 단순한활극이 아니라 이제는 술집 세트장이 관광명소가 될 만큼 고전영화가 태어난 것은 뭐니뭐니해도 감동적인 사랑의 얘기 때문이었으리라. 만일 바버라 스탠윅과 조지 래프트가 주연을 맡고 마지막장면에서 남편만 날려보내고 두 사람이 뒤에 남게 했다면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과 각본상을 타고 할리우드 영화사상 최고의 고전작품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현재의 『카사블랑카』가 태어났을지 의문이다.역시 모든 것은 운명인 모양이다.
〈安正孝.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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