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남북 정상회담] ‘포스트 노무현’ 묶어 두고 부시도 겨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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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호 03면

2007 남북 정상회담 마지막 날인 4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열린 환송 오찬을 끝내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손을 들어 작별인사를 하고 있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평양=연합뉴스]

북한 언론매체는 남북 정상 간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10·4선언)에 대해 아직 구체적 해석을 내놓지 않고 있다. 조선중앙방송은 5일 “선언문이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통일 성업을 이룩하고 부강조국을 건설하려는 온 겨레의 지향과 염원을 반영한 것”이라고만 논평했다. 2007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선 “남북관계를 보다 확대 발전시켜 조선반도의 평화와 민족 공동번영, 조국 통일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나가는 중요한 계기”라고 전했다. 북측은 앞으로 10·4선언 해석에 살을 붙여나갈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입장에서 본 10·4 선언 #이번 회담 시발점 삼아 ‘10년 통치’ 유산 만들 정상외교 나설 수도

하지만 이 선언은 ‘우리 민족끼리’라는 6자로만 볼 수 없다. 남북관계 청사진에다 6자회담 합의문도 접목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남북관계를 규율해온 1972년 7·4 남북 공동성명, 91년 남북기본합의서, 92년 한반도비핵화 공동선언, 2000년 6·15공동선언은 남북에 국한됐다. 10·4선언은 처음으로 남북관계를 넘었다. 이번 선언에 들어가 있는 6자회담 9·19공동선언의 궁극적 지향점은 한반도 평화체제, 북·미와 북·일 관계 정상화, 동북아의 항구적 평화와 안정이다. 이제 남북 정상 선언에도 한반도 문제의 국제화가 자리 잡았다.

2007 남북 정상회담과 10·4 선언에 대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각도 복잡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는 여러 가지를 저울질한 것으로 보인다. 먼저 남북관계. 10·4선언은 그에게 보험증서의 의미가 강하다. 노무현 대통령 후임 정권까지 내다본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의 임기는 내년 2월까지다. 그 사이 이번 선언에 나온 것들이 얼마나 실천될 수 있을까. 정부가 큰 의미를 부여하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는 수년이 걸릴지 모른다. 다음달 열기로 한 국방장관 회담에서 이 지대의 전제가 될 공동어로구역 설정이 타결될 가능성은 없다. 그동안 열린 장성급 회담에서 남북의 입장은 좁혀지지 않았다. 남포와 안변의 조선협력단지 조성이나 도로와 철도의 개·보수도 시간이 걸리는 것들이다. 다음달로 예정된 총리회담에서 합의가 나온다 해도 사전 조사 수준일 수밖에 없다. 경의선을 이용한 베이징 올림픽(2008년) 공동 참가는 다음 정권이 결정할 몫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10·4선언의 본격적인 이행은 기대하기 어렵다. 후속조치를 위한 회담만 하고 끝날 가능성이 크다. 북한 입장에서 보면 남북관계의 청사진은 노무현 정부와 그리고, 그 이행은 차기 정부에 넘기는 꼴이다.

김 위원장은 차기 남한 정부를 이 선언의 틀에 묶어두려 한 것으로 보인다. 어느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대북 화해노선으로 유도하겠다는 계산도 한 것 같다. 차기 정부와 협의해도 늦지 않을 베이징 올림픽 문제 등까지 합의문에 넣은 것은 그런 분석을 낳게 한다. 이런 사안들은 지금까지의 장관급 회담에서도 합의가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10·4선언은 대선 대비용 색채도 없지 않다. 대선 개입용이라기보다는 차기 정부와의 관계 설정용이라는 얘기다. 북한의 통일전선부 라인은 한국의 대선 판도와 이 선언이 여기에 미칠 영향을 읽지 못할 정도로 약체가 아니다. 남한 저류의 민심은 시시각각 상부로 보고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상식이다.

두 번째는 대외관계다. 북한이 비핵화 프로세스 이행을 통해 북·미 관계 정상화와 한반도 평화체제의 진전을 이루려는 의지는 분명해 보인다. 현재는 북한이 대미 관계 악화에 대비해 남북관계를 지렛대로 활용해온 과거와는 180도 다르다. 남한을 북·미 관계 정상화의 촉진자로 삼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남북 간에 서해 공동어로구역 설정 등 초보적 군사 신뢰구축 조치가 없으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바라는 종전선언과 그것이 가져올 후속조치를 따라잡지 못한다. 내년 봄은 부시 행정부가 제대로 외교력을 펼 수 있는 사실상의 기한이고, 남한의 새 정부가 출범한 직후다. 혹시라도 북·미 관계 정상화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체제에 대해 남한 정부가 발목을 잡거나 사전 준비를 하지 않으면 그 속도는 늦어질 수밖에 없다. 10·4선언은 그 방지책일 수 있다. 통남통미(通南通美)로 가야 하는 시점이다. 그런 만큼 10·4선언에는 김 위원장의 비핵화, 북·미 관계 정상화,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의지도 묻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미 관계 정상화와 평화체제 프로세스는 김정일 체제에 이중의 안전망이다. 김 위원장은 미국의 보수정권이 대북정책을 바꾼 지금과 같은 기회를 다시 잡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마침 대일 관계도 호전될 수 있는 분위기다. 대북 강경파로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을 북·일 국교정상화의 조건으로 내건 아베 신조 정권이 끝나고, 이에 대해 유연한 입장의 후쿠다 야스오 정권이 들어섰다.

세 번째는 북한 국내정치다. 8일은 김 위원장이 노동당 총비서로 추대된 지 만 10년이 되는 날이다. 김일성 주석 사망 후 3년3개월의 공백을 마감하고 김정일 시대를 연 10돌을 맞아 체제 선전용이 필요했을지 모른다. 10·4선언의 경협 항목은 거기에 이용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수재로 북한의 분위기는 예년보다 더 가라앉았을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지금 통치 유산(legacy)을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민주국가 지도자나 전체주의 국가 지도자나 통치유산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다. 공과(功過)를 다른 데로 돌리기 어려운 전체주의 국가 지도자는 더할 수 있다. 더구나 그의 체력은 예전 같지 않다. 그는 이번의 남북 정상회담을 새 안보환경 정비와 대미 적대관계 종식을 위한 정상외교의 시발점으로 삼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김정일 체제 출범 10년 만에 새 이정표를 세우는 길이기도 하다. 동시에 유훈통치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잃어버린 10년’이라는 혹평을 떨쳐버리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이미 한 차례 ‘시간과의 싸움’에서 진 바 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과 더불어 추진한 북·미 관계 정상화가 클린턴 행정부의 임기 말 벽에 부딪혔다. 지금도 시간은 북한편이라고 장담하지 못한다. 내년은 김 위원장이 개정헌법에 따라 국방위원장에 재추대된 지 10년째다. 그가 10년 통치를 어떻게 총결산할지 주목거리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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