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주최 만찬에 안 나온 김 위원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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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3일 오후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만찬에서 건배하고 있다. [평양=연합뉴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3일 밤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 주최의 답례 만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만찬 전 노 대통령이 5.1 경기장에서 관람했던 아리랑 공연에도 동석하지 않았다.

당초 우리 측은 만찬장에 김 위원장이 올 것으로 기대했다. 2000년 정상회담 당시 답례 만찬에 참석해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한 남측 참석자들과 샴페인을 '원샷'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한 전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만찬이 끝날 무렵 두 정상은 '6.15 공동선언에 합의했다'고 발표해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2007년 회담에서 두 정상이 자리를 함께한 것은 2일 낮 4.25 문화회관 광장의 환영 행사, 3일 오전.오후의 단독 정상회담 등 세 차례뿐이다. 노 대통령은 이번 회담 기간 중 북한의 명목상 국가 원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다섯 차례 만났다. 2일 환영행사 때 김영남 상임위원장은 김 위원장과 인사하면서 깍듯이 고개를 숙여 두 손으로 악수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경남대 양무진 교수는 "노 대통령이 체류 연장 요청에 소극적인 반응을 보인 데 대해 서운한 감정을 드러낸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는 "깜짝쇼를 즐기는 김 위원장이 4일 환송 오찬을 성대히 베풀기 위해 여지를 남겨둔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건강이 예전만 못하기 때문이란 해석도 있다. 남북 정상회담을 이제는 실무회담이나 외교적 회담으로 공식화 하려는 김 위원장의 의도가 반영됐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남북 정상회담의 정례화에 대비해 김 위원장이 회담을 맡고, 김 상임위원장이 의전을 맡는 역할 분담을 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김대중 전 대통령에 비해 노 대통령의 격(格)을 한 단계 낮춰 보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온다. 김 전 대통령은 김 위원장보다 연장자인 데다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사선을 넘나들며 민주화운동을 펼쳐왔다. 그래서 김 위원장이 파격적으로 대접했다는 것이다. 다만 김만복 국정원장은 4일 발표할 합의문 조율 때문에 만찬에 불참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 대통령 "시간이 아쉬울 만큼 유익했다"=노 대통령은 건배사에서 "오늘 정상회담은 시간이 아쉬울 만큼 유익하고 진솔한 대화가 이뤄졌다"며 "김 위원장의 평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고,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는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서로의 장점을 살려 개성공단과 같은 협력 거점을 단계적으로 넓혀 나간다면 남북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것은 물론, 궁극적으로는 경제공동체로 발전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김영남 상임위원장은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해 온갖 도전을 이겨내고 격변하는 정세 속에서 역사의 기회와 민족의 진로를 자주적으로 열어나가야 한다"며 "모든 장벽을 초월해 민족 대의를 앞에 놓고 북남이 뜻과 힘을 합쳐 나가자"고 말했다.

예영준.서승욱 기자, 평양 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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