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국 거센 추격에 美 명문 MBA도 ‘리모델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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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학 학생신문인 ‘하버드 크림슨(Harvard Crimson)’ 27일자는 일주일 전 포브스지가 발표한 ‘미국 400대 부자’ 목록을 기초로 이들 갑부의 모교를 조사했다.

그 결과 하버드 동문이 42명으로 미 대학 중 1위였다. 42명 중 28명은 하버드 경영학석사(MBA) 출신이었다. 하버드대에서 일개 대학원인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HBS)’ 출신이 2위를 차지한 스탠퍼드대(30명)에 버금가고 3위인 펜실베이니아대(24명)보다 더 많은 초특급 부자들을 배출했다. 하지만 이런 막강한 HBS를 비롯해 미국의 최상위 경영대학원들이 국내외에서 만만치 않은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HBS)은 지난 13일 ‘2+2’라는 새 입학제 도입을 발표했다. 학생의 10%를 ‘2+2’로 선발할 계획이다. 첫 번째 ‘2’는 MBA 과정에 지원하게 될 대학교 2학년생에서 따왔다. 원래 대학을 졸업하고 기업에서 일한 후 MBA에 입학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대학 2학년 가운데 우수인력을 미리 뽑겠다는 취지로 마련한 제도다. 인문ㆍ사회ㆍ자연과학 전공자들 가운데 로스쿨 등 다른 대학원으로 빠질 학생들을 입도선매하는 식이다. 기업이 요구하는 다양한 전공과 재주를 갖춘 학생들을 주로 뽑기로 했다.

두 번째 ‘2’는 합격자들이 HBS에 입학하기 전에 구글· 매킨지 등 세계 굴지의 회사에서 근무하게 될 2년간의 비즈니스 경험 기간을 말한다. 현장경험을 한 다음 대학원에 입학시킬 경우 보다 실용적인 학습효과를 거둘 수 있다.

명성 높은 HBS에는 매년 약 7000명 지원해 1000명이 입학한다. 그런 HBS가 대학 2학년생까지 ‘유혹’하는 이유는 뭘까. 차별화가 생존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현재 MBA 과정에 입학하려면 28세 정도는 돼야 한다. 미 MBA 과정이 약 20년 전부터 입학조건으로 상당한 기간의 업무 경험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2+2’는 그 기간의 대폭 단축을 의미한다.

하버드의 라이벌인 스탠퍼드가 선택한 차별화 전략은 교과목 전면 개편이다. 신학기부터 실시되는 개인맞춤형 교육이 개편의 핵심이다. 이를 위해 나이키의 설립자인 필 나이트가 기부한 1억500만 달러의 자금이 소요됐다.

미 경영대학원들은 지원자 수와 졸업생들의 취업률ㆍ연봉 추이에 따라 울고 웃는다.
지금은 호황이다. MBA의 인기는 1999년 이후 하향추세였으나 최근 다시 옛 영화를 회복했다. 우수 MBA 확보에 혈안이 된 기업들은 10만~15만 달러의 초봉을 제시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MBA의 3분의 1가량은 연봉 10만 달러 이상으로 출발한다. 미 경영대학원입학위원회(GMAC)는 톱10 대학 MBA는 졸업 후 임금이 입학 전에 비해 56%나 증가한다고 보고했다.

미국은 MBA 종주국이다. 그러나 미 대학들은 ‘성공에 따른 자기희생(victim of one’s own success)’을 겪고 있다. MBA 과정은 1950∼60년대부터 유럽ㆍ중남미ㆍ아시아 등 전 세계로 확산됐고, 최근 가속도가 붙었다. GMAC 조사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전 세계에서 신설된 3710개 MBA 과정 중 80%는 미국 이외의 지역에서 출범했다. 1500개는 유럽, 1449개는 기타 지역. 미국은 708개에 불과했다. MBA의 보편화로 유럽ㆍ인도ㆍ중남미에서는 MBA가 취업이나 승진에 ‘가산점’이 되는 게 아니라 당연시되는 항목이 되고 있다.

미 MBA에 대한 가장 강력한 도전자는 ‘미국 MBA 따라 하기’로 큰 성과를 올리고 있는 유럽 대학들이다. 미국식 기금모금(fundraising)을 도입하고 강의는 영어로 진행한다. 자국어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입학시험도 미국의 경영대학원입학시험(GMAT)을 요구한다. 미국의 특장인 ‘인종의 도가니(melting pot)’ 정책도 수용해 외국 학생 비율은 유럽 MBA 과정이 더 높다. 기업이 요구하는 다문화능력(multicultural competence)은 그런 면에서 유럽이 더 낫다. 프랑스의 앵세아드(Insead)는 아예 다국적 컨설팅 회사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에서 중역으로 26년간 일한 J. 프랭크 브라운을 학장으로 영입해 미국식 경영논리를 이식하고 있다.

유럽의 매력은 미국과 달리 MBA 과정이 2년이 아니라 1년이라는 점이다. 그만큼 시간과 학비가 절감된다. 경제 규모가 미국을 능가하는 유럽연합은 이미 1990년 유럽 교육제도 통합을 위한 볼로냐 협약을 체결했다. 유럽산 MBA이면 유럽 전역에서 통용될 수 있는 토대가 일찌감치 마련됐다. 유럽 대학들은 구 식민지권뿐만 아니라 미국에도 손을 뻗치고 있다. 예컨대 영국 MBA 진학을 선택한 미국인 학생의 수는 94~95년 235명에서 2004~2005년에는 648명으로 3배 증가했다.

아직 유럽만큼 미국에 위협이 되지는 않지만 중국과 인도 MBA의 급성장도 눈부시다.

중국에서는 중국유럽국제비즈니스스쿨(CEIBS)이 선봉에 서고 있다. CEIBS는 상하이 시(市)정부와 유럽연합이 94년에 합작해 설립했다. MBA의 효용성에 대한 중국 정부와 사회의 신뢰를 바탕으로 중국 MBA 시장 전망은 매우 밝다. 1991년 9개 MBA 과정이 개설돼 있었으나 현재는 95개로 늘었다. 매킨지의 조사에 따르면 현재 국제환경에서 무리 없이 활동할 수 있는 중국인 중역의 수는 약 3000~5000명이다. 2020년까지 7만5000명이 필요하다.

차이나데일리의 20일 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현재 11만5000명의 MBA를 배출했다. 이는 중국에 필요한 MBA 인력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또 다른 초강대국 후보 인도에는 무려 1400개의 MBA 과정이 있다. 인도는 매년 8만4000명의 MBA를 쏟아낸다.

세계화라는 전쟁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MBA 전투에서 누가 승자가 될까. 아마도 경영기법ㆍ언어ㆍ다문화능력 등의 영역에서 최고의 교육을 제공하는 대학들일 것이다.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은 이렇게 말했다. “교육이란 학교에서 배운 것을 다 잊어버리고 남는 그 무엇이다.” MBA의 경우는 그게 뭘까. 아마 승자만이 확신 있게 답할 수 있을 것이다.

김환영 기자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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