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백자 ‘두 미인’ 사이 분청사기는…거침없는 과장·생략 ‘추상파 아가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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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청사기 물고기 무늬 병, 15세기 후반~16세기. 높이 29.7..

물고기가 뛰어오를 듯 지느러미를 활짝 폈다. 지느러미는 큼직하게 과장했고 비늘은 점점이 찍는 정도로 생략했다. 호방하고 자유롭되 막되지 않다. 병에 연꽃과 물고기를 함께 그려 넣어 연년유여(延年有餘), 즉 해마다 여유있고 즐겁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계룡산 분청사기’ 테마전에 나온 분청사기 물고기 무늬병이다. 이 전시에서는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계룡산 기슭 가마터에서 나온 304점을 볼 수 있다. 1927년에는 조선총독부가, 92년에는 국립중앙박물관과 호암미술관이 이 가마터를 조사했다.

 회청색 그릇에 백토를 입혔다 해서 분청사기다. 미술사학자 고유섭 선생이 1930년대 ‘분장회청사기(粉粧灰靑沙器)’라고 부른 게 오늘에 이르렀다. 시기적으로는 고려의 쇠락과 조선의 건국, 이 과도기에 나온 ‘새시대의 그릇’이다. 고유한 비색 바탕에 정교하게 무늬를 새긴 것이 상감청자다. 그 청자와 백자를 잇는 것이 분청사기다. 청자처럼 정교하지 않아도, 백자처럼 절제하지 않아도 되니 생동감과 자유분방함이 한껏 살아났다.

 분청사기는 조선 전기 200년 가까이 왕실과 서민이 두루 애용했다. 14세기 후반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해 세종연간(1419∼50)에 절정을 이룬 뒤 15세기 후반부터 백자에 자리를 내주기 시작했다. 이 무렵 경기 광주 일대에 임금이 사용하는 백자를 만드는 관요가 설치됐기 때문이다.

 학봉리 가마에서는 15세기 초부터 16세기 전반까지 사기 생산이 활발했다. 분청사기의 쇠퇴기에 되려 흥성한 곳이다. 특히 철화 분청이 유명했다. 철분이 들어간 안료를 사용해 사기 표면에 붓으로 모양을 그렸다. 사기를 굽고 나면 철분그림이 검게 돼 바탕의 흰빛과 선명한 대조를 이뤘다. 물고기, 한자, 넝쿨무늬 등은 거침없는 과장과 생략으로 추상에 가까워지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는 철화기법 뿐 아니라 상감기법(그린 무늬 부분을 긁어낸 뒤 여기에 백토, 자토를 넣고 유약을 발라 구워내는 방법), 인화기법(꽃모양 등의 도장을 찍은 뒤 백토를 넣어 구워내는 방법), 귀얄기법(풀을 엮어 만든 빗자루 모양 도구로 백토를 바르는 기법) 등 다양한 기법의 분청사기 및 회청사기, 백자 등이 나왔다.

 박물관은 이번 테마전에서 학봉리 가마 생산품을 1호부터 7호까지 가마별로 공개하며, 소장하고 있는 철화 분청사기 명품과 학봉리 가마 발굴품을 비교 전시한다.

또 27년 발굴과 92년 재발굴의 주요 장면 및 발굴 성과를 사진과 함께 전시하고 있다. 전시관 양옆에서는 청자·백자 상설전이 열리고 있어 시대를 풍미한 도자기들을 두루 감상할 수 있다. 전시는 내년 2월 17일까지다. 02-2077-9496.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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