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특파원 시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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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미국/북 한국방패로 미 상대 「인질극」/친북인사 제재반대 「인질범의 경고」
북한의 국제원자력기구(IAEA) 탈퇴선언으로 한반도의 긴장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그럴수록 국제사회와 긴밀한 협조체제를 통해 냉철히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북한의 탈퇴가 전해졌던 IAEA의 빈본부,일본인들의 한반도 상황인식,그리고 미국에서 벌어진 친북인사들의 「대화해결」 주장을 지켜보면서 북한의 탈퇴선언으로 조성된 현지 분위기를 중앙일보 특파원들의 시각을 통해 짚어본다.
워싱턴의 내셔널 프레스빌딩에서 14일 대북한제재 및 군사적 응징을 반대하는 회의방식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미국내 친북한 인사들로 꼽히는 임창영 전 유엔대사·이승만목사·정기열신부 등이 주도하는 이른바 「한반도 위기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북미 비상위원회」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한반도 핵위기 평화적 해결요구 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날 회견에 나온 인사들은 북한측 핵외교의 정당성과 김일성주석의 진정한 지도력을 강조하고 미국·일본의 대북한제재 기도를 격렬한 어조로 비난했다.
한국에서의 위기의식이 높아가고 있는 것 못지않게 친북한 인사들이 주도한 이 회견은 북한 역시 상당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음을 그대로 전하고 있었다.
북한핵은 현재 미국이 강경대응방침을 결정함으로써 주도권이 미국에 넘어가 있는 상태다. 북한은 당초 핵카드를 통해 대미외교에서 주도권을 확보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미국이 제재로 방향을 굳히면서 수세에 몰린 북한은 이를 억지하기 위해 한국에 대한 군사적 보복위협으로 대응하고 있다.
북한은 핵을 대미외교 및 경제관계개선 확보의 도구로 삼고 있는 반면 남쪽의 동포를 미국의 물리적 위협을 억지하는 방패로 삼고 있다. 즉 동포를 인질로 삼는 이 사건은 동시에 동북아의 국가간 인질사건이 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남북한 및 미국의 3각구도에서 북한은 한국을 방패막이로 앞세우고 핵을 내보이며 미국에 경제·외교적 반대급부 등 요구사항을 들어줄 것을 주장하고 있으며,한국은 미국에 인명피해를 내지 않고 해결해줄 것을 청원하고 있는 모습이다.
한국이 취할 수 있는 선택도 「불바다 서울」과 「녹아날 남측」을 연발하고 있는 북한의 심기를 거스리지 않고 미국이 북한과 조속한 타협을 해줄 것을 호소하는 것처럼 운신의 폭이 좁아 보인다.
한국이 이번 북한 핵문제를 두고 별다른 외교적 이니셔티브나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이유도 역3각형의 아래쪽 모서리에 위치한 불리한 구도적 상황 때문이다.
워싱턴의 친북한 인사들이 소리높여 주장하는 대북한제재 반대와 평화적 해결요구는 어쩌면 북한이 미국의 강한 의지를 뒤늦게 감지,다급해서 외치는 인질범의 마지막 경고와 호소로 들리기도 한다.
진정한 평화와 대화를 원한다면서도 한편으로 핵문제의 은폐를 고집할 수 있을까.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현재 평양을 방문,거의 마지막이랄 수 있는 북한­미국간의 협상노력을 하고 있다. 카터의 역할이 성공해서 진정한 대화의 돌파구가 열리길 기대해본다.<워싱턴=진창욱특파원>
◎일본/안보 재점검·자위대 강화 기회로/유사시 어떻게 피해 줄이나만 관심
요즘 일본에서는 북한 핵문제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일 언론들은 한국이 그동안 중단했던 민방위훈련을 재개했다는 뉴스를 전하고 관광객 감소 등 한국경제에 끼치는 악영향과 긴장상태를 자세히 보도했으며 일부 언론은 한국에 진출한 일본기업들이 주재원 가족들을 대피시키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미확인 보도까지 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일 경시청은 오사카(대판)와 교토(경도)의 조총련본부를 수색해 만일의 사태에 대배한 정보수집 활동을 펴고 있다. 또 일본 우익들의 조총련계 재일교포에 대한 행패가 늘어나고 있다. 이같은 상황은 북한과의 긴장이 고조되고 조총련의 테러라도 발생한다면 재일동포들이 당하게 될 사태를 예측하게 된다.
와타나베 쇼이치(도변승일·상지대 교수)같은 우익인사들은 한국 무용론까지 펴고 있다. 냉전종결로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완충지대로서 한국의 존재의의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들은 만약의 경우 한반도가 적화되더라도 일본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같은 입장에는 서울특파원까지 지낸 일부 지한파 언론인들도 가세하고 있다. 한국은 『한반도에 전쟁이 날 경우 일본이 당연히 도와줄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라』는 것이다. 또 『일본도 보통국가처럼 군대를 갖고 국제평화를 위해 자위대를 해외에 파견하는 한편 북한 핵개발에는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랑) 신생당 대표간사같은 보수정객의 목소리가 기세를 올리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일정부는 한반도 전쟁까지 가상한 시나리오를 짜고 있다. 몇백만명에 이를 난민처리 대책 등이 그 안에 들어있다. 한민족이 어떻게 되느냐가 아니라 일본의 피해를 어떻게 최소화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일본은 북한 핵문제를 계기로 일본의 안보를 다지고 무장을 기도하는 등 한반도 긴장을 즐기고 있는 감마저 든다.
이같은 호들갑스럽게 보이는 일본의 북한 핵반응도 일본을 방문한 미국인들에게는 태평으로 비치는 모양이자. 지역적으로 한반도와 그렇게 가까운데 「예상밖」이라는 소감들이다.
미국은 미국대로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유지라는 세계 전략 일환으로 한반도를 다뤄오고 있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이라크의 예에서 보듯 미국은 미국의 자존심이 상하거나 세계전략에 차질이 오는 경우 가차없이 응징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한일 군사전문가들은 『미국이 북한 핵시설 등 제한된 지점만 폭격하고 북한도 역시 제한된 보복을 하는 경우 미군은 별로 손해볼 것이 없으므로 군사적 충돌은 충분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지적한다.
안보는 미국이 알아서 해줄 것이라는 등의 안이한 기대는 이젠 버려야 할 때다. 한반도 긴장으로 손해를 보는 쪽은 결국 우리들일 수 밖에 없다. 정말 대화로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하지 않으면 한민족은 스스로를 희생시키는 화를 자초하게 될지도 모른다.<동경=이석구특파원>
◎독일/호들갑 떨 필요없는 IAEA 탈퇴/초조한 북의 「재탕카드」… 과민반응 말아야
북한의 국제원자력기구(IAEA) 탈퇴선언으로 한국으로부터 오는 소식을 보면 온통 난리가 난 것 같은 인상이다. 그동안 너무 잠잠해 오히려 이상하던 차에 탈퇴선언에 때맞춰 예비군·민방위훈련이 강화되고 쌀·라면·생수 등 사재기가 재등장해 곧 전쟁이라도 날 것 같은 긴박한 분위기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흥분을 가라 앉히고 냉철하게 현실을 판단해야 한다. 사실 북한의 이번 IAEA 탈퇴선언은 경천동지할 일이 못된다.
우선 IAEA 정기이사회가 기술원조중단 등의 대북제재를 결의한 지난 10일 이미 북한의 IAEA 이사회 수석대표인 윤호진참사관은 「평양의 공식입장」이라고 밝힌뒤 이와 똑같은 발언을 했다. 따라서 북한 외교부의 이번 성명은 이를 반복한 것으로 새로울 것이 없다.
중요한 사실은 북한의 IAEA 탈퇴에도 불구하고 핵사찰 근거가 되는 핵확산금지조약(NPT)상의 의무,즉 북한이 IAEA와 체결한 핵안전협정 이행의무는 불변이라는 점이다.
북한이 성명이 발표된지 하루가 지난 14일에도 IAEA측은 『별것 아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북한의 이같은 의도적 IAEA 탈퇴선언 확대재생산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
북한은 IAEA 탈퇴 카드를 IAEA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를 막기 위해 이미 사용했다. 북측의 윤 참사관이 이를 처음 공개한 시점은 IAEA이사회의 결의 직전이었다. 그러나 중국까지 묵시적 찬성을 한 가운데 이사회가 제재를 결의,이 카드는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IAEA의 대북제재 결의이후 유엔의 본격제재를 앞둔 북한은 더욱 초조할 수 밖에 없었지만 마땅한 국면전환용 카드가 없었다. 특히 미국과의 협상재개에 매달리고 있는 북한은 그들 입장에서 「당근」에 해당하는 『미국이 수교해주면 핵개발을 포기하겠다』는 김일성주석의 발언 등을 간간이 흘릴 수 있었지만 「채찍」이 없었다.
그렇다고 사찰단원의 추방을 보류할 정도로 아끼는 최후카드인 NPT 탈퇴를 써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북한은 IAEA 탈퇴 카드를 「재탕」했고,의도대로 한국에서의 심리적 충격과 같은 어느 정도의 효과도 보고 있다. 이렇게 볼 때 북한의 IAEA 탈퇴에 우리가 호들갑 떨며 과민반응을 보인다면 이는 카드가 하나밖에 없는 북한의 전략을 결과적으로 도와주는 셈이 된다.<베를린=유재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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