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300조 빚더미 속에 또 늘어난 내년 예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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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내년 예산이 올해보다 7.9% 늘어난 257조원으로 짜여졌다. 6년 만에 가장 많이 증가하는 것이다. 경상성장률보다도 높다. 만성 적자에 허덕이고, 빚더미에 올라 앉았는데 정부는 팽창예산을 택한 것이다. 그 결과 이 정부는 11조원의 재정적자와 300조원이 넘는 기록적인 국가 채무를 다음 정부에 떠넘기게 됐다. 균형재정을 달성하겠다던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은 공염불이 된 지 오래다. 나라 살림이 이 지경이 됐는데, 누구 하나 사과도 반성도 없다.

이 정부는 성장보다 분배에 초점을 맞춘 ‘코드 예산’을 공고히 했다. 균형발전 예산을 11.4% 늘렸다. 행정중심복합도시에 올해보다 네 배, 혁신도시는 13배 많은 예산을 투입한다. 복지 예산을 10% 늘렸고, 공무원을 마구 늘린 바람에 인건비도 7% 불어났다. 반면 성장동력을 키우는 산업·중소기업 예산은 0.1%, 사회간접자본 예산은 2.4% 증가에 그쳤다. 대통령의 ‘대못을 박아두고 싶은 마음’이 이런 식으로 예산에 반영된 것 아닌가.

재정은 국가경제의 버팀목이다. 외환위기 당시 예상보다 빨리 경제가 회복된 것도 재정이 튼튼했기 때문이다. 당시 재정마저 부실했으면 공적 자금을 활용하는 데 한계가 있고, 외국자본을 끌어들이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역대 정부는 건전한 재정을 다음 정부에 물려주려고 노력했다. 이런 전통은 이 정부에서 깨졌다. 그뿐 아니라 청와대 정책실장부터 말단 공무원까지 나랏돈을 빼먹는 일이 끊이지 않고, 재정수지가 17조원이나 잘못 집계됐는지도 모르는 한심한 지경에 이른 것이다.

다음 정부는 취약한 재정을 떠안는 데다 이 정부가 벌여놓은 사업의 뒷감당을 하느라 운신의 폭이 좁을 것이다. 여야 어느 쪽이 집권해도 마찬가지다. 이런 부담을 줄이려면 정기국회에서 여야가 합심해 예산안을 꼼꼼히 심의해야 한다. 대선에 정신이 팔려 적당히 훑어보거나, 표를 의식해 선심성 예산을 늘려선 안 될 것이다. 불요불급한 예산을 확 줄여라. 그게 세금 내는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