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당장 시 못 써도 여한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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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문인수 시인이 올해 미당문학상 수상자가 됐다. 고맙고 반갑다. 하필이면 올해여서 더욱 그러하다. 문인수 시인의 수상 소식은 우리에게 분명하고도 귀한 사실 두 가지를 일러준다. 역병처럼 떠도는 ‘간판주의’가 아직은 더럽히지 못한 영역이 남아있다는 사실이 그 하나이며, 그놈의 ‘짝퉁’이 오로지 시인의 영토엔 침범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다른 하나다.

 문인수 시인은 42세에 문예지로 등단했고, 대구에 거주하며, 최종 학력은 고졸이다. 어느 조건도 이른바 ‘주류’와 거리가 있다. 그런데도 올 미당문학상은 문인수 시인의 손을 들었다. 문인수 시인의 수상은, 마흔 줄에 들어서야 비로소 등단한, 지방 거주 고졸 시인이 국내 최대 규모의 문학상을 받았음을 의미한다. 하여 그저 고맙고 마냥 반가운 것이다. 
 문인수는, 그 연배와 상관없이 2000년대 시인이다. 문인수란 이름이 중앙 문단에서 거론된 건 2000년부터다. 시인은 그때, 쉰다섯의 나이로 김달진문학상을 받는다. 중앙 문단에서 문인수에게 수여한 최초의 상이다. 시인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그때 나는 스스로 시 쓰기에 무슨 발동이 새로 걸린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말하자면 시 쓰는 일이 어느 때보다 재미가 났으며 은근히 혼자 신명이 붙어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이때부터 이런저런 문학상 후보에 자꾸 이름이 올라가곤 했다.”

 미당문학상 최종심에 문인수란 이름이 처음 보인 건 이태 전이다. 그때부터 시인은 해마다 유력 후보로 거론된다. 2005년 미당문학상 최종 심사 때 일화다. 최종 심사를 맡았던 정현종 시인이 문인수의 작품을 읽고서 한 마디 평을 얹었다.

 “이 친구, 아무리 봐도 지금이 전성기야.”

 그때 시인의 나이 예순이었다. ‘환갑에 맞은 전성기’란 말은 이때부터 그를 따라다녔다. 특히 지난해 초 발표한 여섯 번째 시집 『쉬!』는 문단 안팎에서 높은 관심을 불러모았다. 이 시집으로 그는 시와시학상·편운문학상 등 네 개의 문학상을 잇달아 거머쥔다.

 문인수의 시는 야생의 시다. 문인수의 시는 온갖 정성 기울여 가꾸는 화분 안의 화초가 아니다. 저 넓은 들판 어디에서 자신의 의지대로 피어나는 야생화다. 세상의 어떤 문학 교과서에서도 볼 수 없는 감각과 표현이 그의 시에선 늘 파닥거리고 꿈틀댄다. 앞서 적은 대로, 시인은 번듯한 시 수업 한 번 받아본 적 없다. 그래서 시인은 여태 길들이지 않을 수 있었다. 삶의, 아니 시의 아이러니다.

 수상작 ‘식당의자’에서도 전혀 예기치 못한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장맛비 맞아가면서도 시인, 대구 근처 유원지로 놀러 나갔던 모양이다. 하나 시인의 눈에 들어온 건 요란스런 유원지 풍광이 아니었다. 겨우, 허술한 식당 천막 안에 놓인 플라스틱 의자였다.

 궂은 날씨 탓에 식당을 찾은 손님은 천막 아래 의자에 앉지 않는다. 사람이 앉지 않았기에 의자는 지금 쉬고 있는 거다. 등받이나 팔걸이도 편안히 보이게 된 거고. 다시 말해 의자는, 장맛비 아래에서만 비로소 숨을 돌릴 수 있다. 그 의자의 속내를, 시인은 헤아린 거다. 

 9월 초순 자정을 넘긴 밤, 서울 순화동 중앙일보사 근처 포장마차. 언제부턴가 촉촉이 젖은 눈매의 시인, 소주잔을 앞에 두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내일 당장 시를 못 써도 여한이 없네. 이 마음, 알겠는가?”

 그 마음, 얼추 짐작한다고 차마 말하지 못 했다. 
 


식당의자

 장맛비 속에, 수성못 유원지 도로가에, 삼초식당 천막 앞에, 흰 플라스틱 의자 하나 몇 날 며칠 그대로 앉아있다. 뼈만 남아 덜거덕거리던 소리도 비에 씻겼는지 없다. 부산하게 끌려 다니지 않으니, 앙상한 다리 네 개가 이제 또렷하게 보인다.

 
 털도 없고 짖지도 않는 저 의자, 꼬리치며 펄쩍 뛰어오르거나 슬슬 기지도 않는 저 의자, 오히려 잠잠 백합 핀 것 같다. 오랜 충복을 부를 때처럼 마땅한 이름 하나 별도로 붙여주고 싶은 저 의자, 속을 다 파낸 걸까, 비 맞아도 일절 구시렁거리지 않는다. 상당기간 실로 모처럼 편안한, 등받이며 팔걸이가 있는 저 의자,
 
 여름의 엉덩일까, 꽉 찬 먹구름이 무지근하게 내 마음을 자꾸 뭉게뭉게 뭉갠다. 생활이 그렇다. 나도 요즘 휴가에 대해 이런 저런 궁리 중이다. 이 몸 요가처럼 비틀어 날개를 펼쳐낸 저 의자,
 
 젖어도 젖을 일 없는 전문가, 의자가 쉬고 있다.



◆시인 문인수

▶1945년 경북 성주 출생
▶85년 심상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뿔』(92년) 『동강의 높은 새』(2000년)『쉬!』(2006년) 등 다수
▶김달진문학상(2000년) 노작문학상(2003년) 편운문학상(2007년)

글=손민호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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