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훈범시시각각

햇반과 5분 북어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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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새색시가 된 후배에게 점심을 샀다. 꽃미남 의사 선생님과 사니 재미가 좋으냐고 농을 쳤더니 대번 “사기 결혼이었다”고 너스레를 떤다. 알고 보니 남편이 종손이었다는 거다. 부모를 일찍 여읜 데다 총각이었던 지라 지금까지 남편 대신 인척들이 제사를 지내왔지만 앞으로는 4대조까지 일 년에 열 번 이상 제사와 차례를 모셔야 할 것 같다고 엄살이다.

 하긴 제상에 올릴 밤 한 톨 쳐본 적 없는 손으로 달마다 한 번꼴로 제수 준비하고 손님 모실 생각하면 겁이 나긴 하겠다. 그래선지 결혼 전에 신랑감이 부모 제사 지내는 걸 거들며 미리 연습해 본 모양이다. 후배의 남편은 총각 시절 남동생과 함께 부모 제사만 약식으로 모셨다고 하는데 그 모습이 볼 만하다.

 과일이야 준비가 어려운 게 아니니 홍동백서(紅東白西), 조율이시(棗栗梨枾)를 제법 지켜 내더란다. 부모님이 촉식(觸食)하도록 과일의 윗부분을 깎는 것도 잊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이어 전(煎)이니 적(炙)이니 시장 반찬가게에서 사온 음식을 올리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위패에 가장 가까이 놓는 밥과 국으로 인스턴트 ‘햇반’과 ‘5분 북어국’이 등장할 때는 웃음을 참을 수 없더란다. 나 역시 눈물 나도록 자지러졌다가 “햇반과 즉석 국이 제법 맛있더라”고 위로하는데, 합석했던 다른 후배의 말이 걸작이었다. “부모님이 와서 보시고 너무 귀여워하셨을 것 같아요.”
 맞다. 그런 거다. 평소 밥 짓는 일이 없어 냄비 하나 변변찮은 두 형제가 뜨거운 물만 부으면 해결되는 즉석 북어국을 제상에 올렸다고 성의 없다 까탈 부릴 부모가 어디 있겠나 말이다. 시장에서 사온 음식인지라 마늘·고추 안 넣는 금기를 지켰을 리 없지만 눈 가리고 코 막고서라도 두 아들 정성을 맛있게 흠향(歆饗)하셨을 게 분명할 터다.

 공자도 “제례의 호화로움보다는 차라리 검소함이 낫다”고 했고 예절 차리기로 따를 자 없는 주자(朱子)마저 “검소함과 슬픔, 공경하는 마음에 바탕을 둬 예를 표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젯밥의 과다, 우열보다 제사 모시는 사람의 정성이 우선이라는 얘기다. 그렇게 따지자니 우리네 제상 차림이 다시 볼 게 여럿이다.

 무엇보다 제수가 너무 구식이다. 제사 음식이란 게 그 시대에 가장 풍성하고 값 나가는 물산을 형편이 닿는 대로 차려 냈던 게 아닐는지. 그런데 오늘날 온갖 새로운 먹거리들이 지천에 널렸어도 제상은 그저 옛 차림 그대로다. 제사가 끝나고도 음복으로 대추나 하나 집을 뿐 제상에 따로 손이 가지 않는 이유다. 입맛 앞서는 아이들은 더욱 그렇다. 제상 물리고 식구들이 먹을 음식을 따로 장만하는 경우도 많다. 이는 검소한 것도 아니고 조상을 공경하는 태도도 아니다. 조상이라고 늘 먹던 것만 먹고 싶겠나. 후손들이 즐기는 새로운 요리나 처음 보는 과일도 맛보고 싶지 않겠나 이 말이다. 팔 걷고 나서는 요리 연구가가 왜 없는지 모르겠다.

 자고로 “남의 제사에 밤 놔라 대추 놔라 한다”는 속담이 있다. 역설적으로 제사 예법이 그만큼 다양하다는 걸 보여주는 말이다. 집집마다 다르다고 가가례(家家禮)라고 하지 않는가. 돌아가신 이가 좋아하던 커피를 제상에 못 올릴 이유가 없고 조상이 애연가였다면 담뱃불을 붙여 놓을 수도 있겠다. 요즘의 와인 열풍을 보건대 앞으로는 와인도 자주 등장할 게 분명하다. 그게 오히려 망자를 추억하는 제사의 참뜻을 살리는 일 아닐는지. 옛것도 좋지만 시대 변화를 따르지 못하면 가치가 없는 게 예법이다. 북쪽을 향해 제상을 차리는 것도 오늘날 남향 아파트에서는 구조적으로 어려운 일 아니냔 말이다.

 이번 추석 연휴에 가족들이 모여 좌포우혜(左脯右醯)니 어동육서(魚東肉西)니 따지지 말고 우리 집안에 가장 알맞은 제사 음식은 무엇이며 예법은 또 어떤 것인지 의견을 나눠보시는 것은 어떨지. 그래서 우리 집안만의 제사 예법 매뉴얼을 만들어보시는 건 어떨지. 그렇게 만든 후배 부부의 깨소금 차례상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이훈범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