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휘의 강추! 이 무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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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호 21면

국립극장이 큰 판을 하나 벌였다. 우선 해외에서 그리스 국립극단의 ‘엘렉트라’, 터키 국립극단의 ‘살로메’, 영국 글로브 극장의 ‘사랑의 헛수고’ 등 이름만 들어도 묵직한 국립 단체들의 작품을 대거 초청했다. 깊이 있는 해외의 고전 명작들을 연이어 볼 수 있는 귀한 기회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조금 더 강조점을 두고 싶은 이 페스티벌의 프로그램은 국립극단·국립국악관현악단·국립창극단 등 우리의 국립 단체들이 심혈을 기울여 내놓은 공연들이다.
평소에도 국립 단체들의 공연은 소리·소문 없이 지나가기 십상이고 이번에도 해외 초청 프로그램이 꽤나 화려한 관계로 주목을 덜 받고 있어 아쉽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하지 않는가. 이런 기회에 국립 예술단체들이 우리의 문화적 정체성을 지켜가기 위해 어떤 작업들을 하고 있는지 관심을 갖고 봐주시기를 권한다.

국립극장 10월 27일까지, 문의: 02-2280-4292(www.ntok.go.kr)

국립극단 ‘태(胎)’
9월 23일(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평일 오후 7시30분, 토 오후 4시·7시30분,
공휴일·일 오후 4시(월 쉼)

오태석 국립극단 예술감독이 이미 1970년대에 만들어낸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2000년대 들어서 몇 차례에 걸쳐 다듬어지며 국립극단의 주요 레퍼토리로 자리잡고 있다. 작품은 수양대군이 단종의 왕위를 찬탈했던 그 익숙한 역사를 다룬다. 그러나 그저 드라마틱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무대 위에 재현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연출가 오태석은 피도 눈물도 없는 냉정한 살해와 죽임당하지 않기 위한 절박한 저항의 이야기 속에서 ‘목숨’에 대한, 본능적이고 그래서 더욱 끈질긴, 인간의 갈망을 건져올린다. 오태석 연출 특유의 제의적이고 한국적인 미학이 듬뿍 배어 있는, 꼭 한번 봐야 할 우리 연극이다.

국립국악관현악단
‘네 줄기 강물이 바다로 흐르네’
10월 13일(토)~14(일) 토 오후 6시, 일 오후 4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지난해 국립극장이 4명의 작곡가에게 한국인의 정신적인 세계가 투영된 국악관현악곡을 위촉하였고 이제 그 결실을 보는 무대다. 미국에서 활동 중인 작곡가 나효신의 ‘태양 아래(Under the Sun)’, 김영동 경기도립국악단 예술감독의 ‘화엄(華嚴)’,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곡가 박영희의 ‘온누리에 가득하여…비워지니…’ 그리고 박범훈 중앙대학교 총장의 ‘신맞이’가 각각 차례로 기독교·불교·도교·무속신앙을 소재로 하여 작곡되었다. 평소에 서양음악으로 길들여지고 달구어진 머리에 차가운 물 한 사발 부어보리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공연장을 찾는다면 오히려 의미 있는 시간이 될 듯싶다.

국립창극단 ‘청(淸)’
10월 19일(금)~20일(토)
금 오후 7시30분, 일 오후 3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20세기 초반, 한 사람이 들려주던 판소리 속 등장인물과 이야기를 밖으로 꺼낸 창극이 등장했다. 국립창극단이 서울과 지방에서 이미 여러 차례 공연하며 좋은 반응을 얻었던 이 작품은 표피만 얇게 저며진 채 정형화되어 있는 심청이를 조금 더 심도있게 조명한다. 넓은 마당에 연희자를 둘러싸고 앉아 시끌벅적 추임새를 넣고, 심청이가 울면 따라 울던 우리네 극형식이 객석과 완전히 분리된 서양식 무대 위에 올려지고, 오페라·뮤지컬에 열광하는 이들에게 손짓하는 모습은 못내 안타깝기도 하다. 잘 만들어진 작품은 형식을 넘어서는 감동을 준다. ‘청’은 그런 가능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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