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에서>두얼굴의 사나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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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성희롱 재판결과가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요즈음 우리 사무실에는 그와는 판이한 타입의 남자 동료가 있어 우리를 늘 기쁘게 한다.맡은 일을 손색없이 처리하는 것은 물론이고 여성동료들에게 늘 친절하고 협조적이다.또 무척 꼼꼼하기 때 문에 곁에 있는 나를 언제나 덜렁대는 여자로 만들어 버린다.
그가 청소당번을 맡는 날이면 우리들이 며칠동안 피워댄 게으름의 흔적이 말끔히 씻겨나간다.
그는 쓸고 닦는 것은 물론 여기 저기 못질을 하기도 한다.야유회라도 가면 이사람 저사람에게 먹을 것을 챙겨준다.새내기가 들어오면 분위기가 낯설지 않도록 대소사를 챙겨주는 것도 그의 몫이다. 대부분 남자들이 역할을 나눠 열심히 하고는 있지만 그는 단연 돋보인다.오늘도 그는 복도에 놓인 찬장을 열심히 청소하고 있다.모든 일을 자기 일처럼 생각하는 동료를 보며 나는 감사하는 마음이 된다.
드디어 우리 개발팀이 3년을 끌어오던 작업을 힘겹게 마치고 지난 3월초 가족동반으로 1박2일 일정의 MT를 떠났을 때도 그는 헌신적으로 동료애를 발휘했다.그러나 왠지 그의 아내의 낯빛은 그다지 밝지 못했다.
그날밤 우연히도 나의 옆자리에서 잠을 청하던 그의 아내로부터그에 대한 얘기를 듣고 나는 놀라고 당황해했다.집에서의 그의 남편은 제멋대로의 응석받이였던 것이다.집안일을 함께 거들어 주기는커녕 「피곤하다」「…해달라」「…가져오라」는등 짜증과 요구사항 투성이라는 것.집안에서의 그의 모습이 일터에서 보여준 모습과는 정반대라는 사실에 나는 크게 실망했다.어떻게 전혀 다른 두개의 얼굴을 하고 살수 있을까.이제부터 나는 일터에서의 행동으로 미루어 그의 인간됨됨이 전체를 지레 짐작하지 않기로 했다.의심하고 따져봐야 할 것같다.이러한 행동이 비록 노처녀로 한걸음 더 다가가는 지름길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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