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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오른 주한미군 재배치] 2. 활동 반경 넓히는 주한미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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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미 미래동맹 정책 구상 5차 회의가 열리기 직전인 지난해 9월 말. 양국 간에는 주한미군의 향후 임무와 활동 반경을 둘러싼 교섭이 숨 가쁘게 돌아갔다. 미국이 주한미군의 지역적 역할(Regional Role)에 대한 동의를 요구해 왔기 때문이다. 휴전선에 발이 묶인 주한미군을 지역군(Regional Force)으로 바꾸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미국은 "태평양에서의 위협 대처"가 포함된 한.미 상호방위조약 3조를 주한미군의 한반도 밖 출동의 근거로 들었다.

한국은 제동을 걸었다. 주한미군의 활동 반경이 넓어지면 한.미 동맹은 북한 침략 억지를 위한 국지동맹에서 지역동맹으로 바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미 동맹 결성 반세기 이래 이런 변화는 없었다. 가뜩이나 북핵 문제가 걸려 있었다. 주한미군 재배치 계획에 따른 안보 공백 여론도 거셌다.

한국은 한.미 상호방위조약상 주한미군의 한반도 밖 이동을 허용하는 근거는 없다고 맞섰다. 외교부 조약국의 논리였다. 그러자 미국은 "한국이 미군 이동에 거부권을 행사하느냐"며 불쾌해 했다고 한다. 결국 이 문제는 정치적으로 타결됐다. 한국은 주한미군의 지역적 역할을 양해했다고 외교 소식통은 전한다. 미국의 대한 방위공약 확약, 주한미군의 한반도 밖 전개시 전쟁억지력 유지, 한국과의 사전 협의 등이 조건이었다.

그리고 지난해 11월의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 공동성명은 두루뭉술한 표현으로 한.미 간 양해 사항을 담았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Strategic Flexibility)이 중요하다는 것을 재확인했다"(4항) "한.미 동맹은 동북아와 아시아.태평양 전반의 평화와 안정을 증진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11항).

주한미군 재배치는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주한미군 재배치와 그 역할 변경은 동전의 양면이다. 한.미 동맹의 반경.역할.비전 조정 등 본격적인 작업은 이제부터라는 얘기다. 박용옥 전 국방차관은 "미국은 오키나와 해병대를 이라크전에 투입하듯 주한미군의 기능과 역할을 북한에 고착되는 데서 벗어나 다른 지역으로 확대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주한 미 지상군이 바다를 들락거릴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 세계 미군의 재배치 작업을 지휘하는 더글러스 페이스 미 국방차관의 연설(지난해 12월 3일)에는 주한미군의 미래상이 담겨 있다. "미국의 세계 방위 태세 재조정은 군대 형태.위치.병력.군사력과 동맹의 성격을 새로 고치는 것이다", "우리는 기지 배치만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지 필요할 때 전력을 이동시키는 능력도 강조하고 있다" 미국 전문가들은 더 솔직하다. 마이클 멕데빗 미 전략연구센터 소장은 "주한미군은 한국을 방어하는 동시에 한반도 바깥의 다른 임무 수행을 위한 거점이 되는 것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세미나 논문).

주한미군 재배치와 더불어 주한미군의 역할, 한.미 동맹의 활동 반경을 둘러싼 재조정도 발등의 불인 셈이다. 외교안보연구원 윤덕민 교수는 "미국은 한.미 동맹의 역할을 지역.글로벌 차원으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이라며 "한국은 미국의 요구에 호응할지를 정해야 할 결정적 시점에 와있다"고 말했다. 이것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한.미 동맹 자체가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과제도 한둘이 아니다. 주한미군이 지역분쟁에 개입할 경우 한국도 발을 들여놓아야 할 상황이 생길지 모른다. 주한미군의 한국 밖 출동에 관한 절차 마련도 급하다. 尹교수는 "일본과 마찬가지로 주한미군의 한국 영토 밖 출동에 대한 컨트롤 장치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주변국과의 관계도 부담이다. 특히 대만문제를 안고 있는 중국은 촉각을 곤두세운다. 지난해 11월 말 서울에서 열린 국제문제 세미나에서 중국 학자들은 "주한미군의 평택 이전은 중국에 대한 위협이다""중국은 미국의 의도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주한미군이 장사정포의 사거리에서 벗어나면서 기동성을 갖추고 첨단 무기를 들여오는 데 불안해 한다.

하지만 한.미 동맹의 제한적 지역동맹화는 불가피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해외주둔 미군은 고정군이 아닌 국경을 드나드는 기동군이 돼야 한다는 미국의 입장이 확고하기 때문이다.

조엘 위트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구원은 "차제에 한.미 양국은 군사.정치.경제.인간안보 협력을 포괄한 21세기 동맹 공동선언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미국의 전략 변화에 발맞추지 않으면 한.미 동맹은 기로에 설지도 모른다. 동맹은 변해왔고, 또 영원한 동맹은 없었다.

오영환.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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