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국세청의 부끄러운 행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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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세청은 세금을 걷는 기관이다. 소득에 대해 정해진 법에 따라 세금을 걷고, 혹여 세금을 빼돌리지 않도록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권력기관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이게 잘 지켜지 지 않는다. 세금을 걷는 과정에서 비리가 싹트고, 때로는 정권의 손발이 돼 징세권을 권력으로 휘두르기도 한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세무공무원의 부패가 문제가 돼 쇄신책을 밝혀 왔지만 그때뿐이었다.

부산국세청장이 건설업체 대표로부터 1억원의 뇌물을 받고 세무조사를 줄여 줬다. 세무조사 대상을 단숨에 4개사에서 2개사로 줄인 지방국세청장의 끗발이 놀라울 뿐이다. 이런 후진적 수법이 아직도 통하는 세상인 것이다. 국세청은 예외적인 사건으로 덮고 싶겠지만, 사정은 그렇지 않다. 일선 세무공무원이 납세자에게 1000만원을 받을 요량으로 손가락 하나를 들어 보였다 뇌물죄로 적발되기도 했다. 굵직한 경제사건에는 세무공무원이 오르내린다. 간부부터 말단까지 도처에 비리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이 정부 들어 국세청은 ‘따뜻한 세정’을 표방해 왔다. 스스로 성공했다고 평가했고, 덕분에 세금이 잘 걷힌다고 자랑도 했다. 뇌물을 받고 세무조사를 봐주는 게 따뜻한 세정인가.

이번 일은 청와대 비서관이 개입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국세청이 정권 실세에게 휘둘렸다는 의혹도 커지고 있다. 이러니 국세청이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부동산 거래내역 100여 건을 조사했다는 사실도 곱게 보이지 않는 것이다. 국세청은 “통상적인 업무 처리”라고 밝혔지만, 특정 후보에 대한 표적조사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국세청 스스로 신뢰를 떨어뜨린 결과다.

정부는 국세청과 국정원·검찰·경찰 등 4대 기관의 정치적 중립을 강조했다. 이들 기관이 과연 정치권력에서 자유롭다고 자신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국세청은 최근 불거진 비리와 정치적 중립 의혹에 대해 해명하고 사과하기 바란다. 언제가 돼야 제대로 된 국세청을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