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을 50년처럼 살다 얻은 프리미엄 공주

중앙일보

입력


지난 16일 오전 8시 55분 분당차병원 분만실. 고고성을 내며 새 생명이 태어났다. 3.7㎏의 건강한 여자아이다. 산고를 이겨낸 엄마의 눈에도, 떨리는 손으로 탯줄을 자르는 아빠의 눈가에도 기쁨의 눈물이 흘렀다. 불임으로 고통 받던 지난 5년이 주마등처럼 부부의 뇌리를 스쳐갔다.

설레던 아기와의 첫 만남 쏟아지는 눈물 훔치며 "반갑다"
"혹시나 잘못 될까 열달 내내 가슴 졸였죠"

이봉대(35)·예진희(36)부부에게 건승(태명)이는 ‘아주 특별한 의미’다. 어떤 탄생인들 소중하지 않으랴만 이번의 농와지경(弄瓦之慶: 딸을 낳은 경사)은 참으로 예사롭지 않다.

결혼 후 5년. 아이가 생기지 않는 부부에겐 마치 50년 같은 세월이었다. 주위에서 “왜 아이를 갖지 않느냐”고 물을 때면 가슴 한구석 휑한 바람이 스치곤 했다. 나중에 결혼한 지인들의 임신과 출산 소식을 접할 때마다 마음은 더욱 허하고 막막해져 갔다.
건승이는 이씨 부부에게 오랜 설움을 녹이는 햇살처럼 그렇게 다가왔다.

불임극복의 한줄기 빛은 뜻밖의 곳에서 찾아왔다. 지난해 중앙일보 프리미엄이 분당차병원과 진행한 불임시술 이벤트가 그것. 예씨는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응모했고 당첨소식을 듣게 됐다. “그간 웬만한 방법은 다 해본 터라 기대 반 의심 반이었다”는 예씨. 11월 10일 시험관아기 시술을 받은 후 실낱같은 희망에 기댄 채 시간을 보냈다. 12월 4일. 학수고대하던 말이 들려왔다. “축하합니다. 임신입니다.”

“얼마나 기뻤는지 말론 표현 못하죠. 하지만 걱정도 컸어요. 어렵게 가진데다 아내 나이도 있으니 혹시나 잘못되진 않을까… 열달 내내 가슴 졸였죠.” 이씨는 아이와의 첫 만남 때 나눌 말을 무수히 연습했다. 한데 정작 아이를 대하자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쏟아지는 눈물을 훔치며 “반갑다”는 말만 되뇌었다. 예씨도 마찬가지. 처음 안긴 엄마 품에서 눈물을 뚝 그치는 건승이를 보며 “우리 딸이 엄말 알아보네…’ 라며 감격할 따름이었다.

중학교 교사인 예씨는 현재 3개월 간의 출산휴가 중이다. 휴가가 끝나면 다시 교단에 서려 했지만 생각이 달라지고 있다. 상황을 보아 아예 1년 휴직을 고려 중이다. 이씨도 출근 때마다 건승이가 눈에 밟힌단다.

기다림 만큼 아이에 대한 바람도 남다를 듯 했는데 의외로 소박했다. 부부는 “평범하고 건강하게 잘 자라주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엄마 아빠가 얼마나 힘들게 자기를 얻었는지, 주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관심과 사랑을 줬는지… 그만큼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읊조리는 엄마의 소망이다.

불임으로 고통받는 다른 부부들을 위한 당부도 빼놓지 않았다. 예씨는 “불임에는 산모의 나이가 큰 영향을 미치니 망설이지 말고 빨리 아이를 가지려고 노력했으면 좋겠다”며 “절대 포기하지 말고 방법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 시도해볼 것”을 권했다. 이씨는 “주위에서도 불임부부를 측은하게 보기보다 조급해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산후조리원을 나서면 제일 먼저 엄마·아빠가 사는 모습을 진솔하게 보여주고 싶다는 부부. 아이와 눈을 맞추고 “집도 있고 차도 있으니 걱정 마라”며 농을 던지는 모습에서 지난 세월의 생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프리미엄 이경석 기자 yiks@joongang.co.kr
사진= 프리미엄 최명헌 기자 choi31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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