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을찾아서>김요일 長詩集 "붉은기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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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 ○… ○… ○… ○… ○… ○… 『요즘 예술작품에서 개성을 찾기란 힘듭니다.이름을 가려놓으면 누구 시인지 가릴 수 없을 정도로 개성 없는 시들만 쏟아지고 있습니다.시인으로 살아남기 위해선 도박사처럼 승부패를 던질 수밖에 없으며 기성의 시들과는 전혀 다른 실험정신 으로 가득 찬 개성을 내보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 …○ …○ …○ …○ …○ …○ 젊은시인 김요일씨(29)가 장시집『붉은 기호등』(문학세계사刊)을 펴냈다.90년 계간『세계의 문학』을 통해 문단에 나온 金씨의 첫 시집『붉은 기호등』은 시집 전체가 한편의 실험적 장시로 채워져 있다.
그의 시는 띄어쓰기가 전혀 안돼 있다.행갈이를 의식적으로 무시하고 있는가 하면 같은 페이지에 左.中.右 세개 행을 배치하거나 左.右 2개 행,혹은 중간에 한행만 배치하고 어떤 시구는굵고 큰 활자를 배치하는 등 시의 외형자체가 시 각적으로 어떤형태를 띠게한다.따라서『붉은 기호등』은 기존 시법을 무시한 해체시 혹은 활자 자체로 시각적 이미지를 갖게하는 형태시로 볼 수 있다.
『모든길에는/신호와기호가있다죽어/널브러진고양이처럼,개같은/일상이여!』 교통신호에 의해 차량이 움직이듯 우리의 삶과 생각도기호에 의해 움직인다.사회의 기초적 기호인 언어에 의해 의사를소통할 뿐 아니라 사물을 바라보고 느끼고 사고한다.
『모든길들여진것들아모든껍질아/너희들을벗겨야한다/아름답지 않다.』우리에게 익숙한,길들여진 것들의 껍질을 벗기고 자기만의 전혀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려 한 시가『붉은 기호등』이다.「화염병」「해방구」「썩은정부」「혁명」등 80년대 현실을 지배 하던 정치적 언어들은 이 시집에서 메시지를 갖지 못한다.「오르가슴」「그녀의입에××를갖다댄다」등 노골적인 성적 언어들과의 결합을 통해 金씨의 시는 언어들을 철저하게 표백한다.그의 시는 언어의 사회적 의미를 無化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모 든 기성제도.사회를부정함으로써 또 다른 사회성을 띠었던 80년대의 해체시와 다르다. 『일단 한 실험은 끝냈으니 나만이 할 수 있는 또 다른 실험세계를 개척해야지요.』 같은 실험만 추구하다 그 실험이 전형화돼 실패한 선배실험시인들의 전철을 밟지않기 위해 전혀 다른실험세계를 또 펼쳐 보이겠다고 金씨는 말한다.
〈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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