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수술 필요한 농협(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6년째 농협회장을 맡고 있는 한호선씨가 공금횡령 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게 된 것은 이 나라의 농업과 농민을 위해 불행한 일이다. 우루과이라운드(UR) 타결이후 우리 농촌의 앞날을 걱정하고 함께 활로를 열어가야겠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일반 국민들에게도 그의 배임혐의는 일종의 배신감을 안겨준다.
그는 공금으로 비자금을 조성하고 이 자금을 자신의 선거운동에 썼을 뿐만 아니라 몇몇 시·도 지회장 인사에서 금품을 받았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그러나 비리혐의는 현재 조사과정에 있기 때문에 섣불리 그의 혐의를 사실로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지금 단계에서는 이같은 비리혐의가 생길 수 밖에 없는 농협의 경영풍토를 철저히 조사,분석하고 앞으로의 개선책을 찾는 일이 급선무가 될 것이다.
90년부터 직선체제로 변신한 농협은 1천3백65개 읍·면 단위조합과 조합원 2백만명을 포용하고 있으며,문민정부의 신농정과 UR이후 국내 농업의 활로개척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막중한 역할을 떠맡게 돼있다. 농협을 농민의 손에 되돌려 주자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관주도 농협의 이미지를 벗는 중이고,농업생산력 증진과 농민 지위향상에 큰 기대를 걸게 하는 곳이 바로 농협인 것이다.
그러나 농협이 정말로 농민을 위해 일하는 곳인가에 대해선 오래전부터 논란이 있어 왔다. 우선 농협은 6백34개의 금융점포를 통해 소위 신용사업이라는 금융업무에 골몰하고,정착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농가소득을 늘리는 문제는 소홀히하고 있다는 비판을 듣고 있다.
더구나 농산물의 다단계 유통구조가 경제적으로 또 사회적 큰 문제로 대두돼도 농협이 이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점은 농민뿐만 아니라 비농민에게도 큰 불만이 돼왔다. 외국농산물의 범람에 대응하려면 값싸고 질좋은 우리 농산물을 단축된 유통구조로 원활하게 공급해야 한다. 그러나 농협은 아직 이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농협은 농민의 이익증진을 위해 기민하게 움직여야 하는데도 중간 유통업자에게 항상 뒤지고,다른 다각경영에 정신을 쏟은 결과 농민·비농민으로부터 모두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돈놀이 또는 백화점식 경영만 한다고 비판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농협중앙회장의 독직혐의를 계기로 농협은 정말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과거 관치의 그늘에서 벗어나 효율성과 경쟁력 강화를 추구하는 농민단체로 탈바꿈돼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농업관련 조직의 임직원수가 농어촌 인구의 1.6%나 되고,연간 인건비만도 1조원에 이르는 현실은 크게 잘못된 것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 비대한 조직의 한가운데 농협이 있다. 지금 한국의 농업·농민·농촌은 생사의 갈림길에 서있다는 절박감을 상기하면서 농업단체의 일대혁신을 꾀해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