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Blog] 갈수록 심화되는 스크린 독점 한여름 공포영화도 맥 못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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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지난해 이맘때 영화계의 화제는 단연 ‘괴물’이었습니다. 역대 최다 관객을 기록했고, 스크린 독식이라는 뜨거운 논쟁까지 낳았지요. 당시 ‘괴물’은 역대 최다인 620개 스크린에서 개봉해 700여 개까지 늘었습니다.

 1년이 지난 지금, 스크린 수에 관한 한 ‘괴물’의 기록은 가볍게 갱신됐습니다. 5월 초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첫 타자 ‘스파이더맨3’가 680개 스크린에서 개봉해 첫 주말에 곧바로 816개로 늘었거든요.
 두 번째 타자로 5월 말 개봉한 ‘캐리비안의 해적3’의 폭발력은 더 대단했습니다. 670개로 시작해 무려 912개까지 늘었습니다. 전국 1800여 개 스크린의 50%를 넘는 수치입니다.

특히 서울에서는 점유율이 65%에 달했다는 게 영화진흥위원회의 집계입니다. 전국의 극장 수(300여 개)로 환산하면, 극장마다 평균 세 개의 스크린에서 중복해 상영했다는 얘깁니다. 뒤늦게 7월 말부터 흥행 대열에 가세한 한국영화 ‘화려한 휴가’와 ‘디 워’도 500개 이상 대규모로 개봉했는데, 이들에는 못 미칩니다.

 중복 상영하는 영화는 당연히 관객이 보기 편합니다. 30분 혹은 1시간 간격으로 상영이 시작되니, 일단 극장에 가서 먼젓번 상영이 끝날 때까지 2시간 남짓 길게 기다리지 않아도 됩니다.

그 반대가 ‘퐁당퐁당’이라고 부르는 교차 상영입니다. 실은 ‘퐁당퐁당’만 돼도 양반입니다. ‘퐁…당’도 많습니다. 상영시간이 아침에 한 번과 심야에 한 번, 이런 식이면 예매 없이 극장을 찾은 관객은, 아니 예매를 하려는 관객도 시간대가 맞지 않아 발길을 돌리기 십상입니다.

 요즘 극장가에서는 오락성을 갖춘 공포영화 두 편이 이런 신세입니다. 8월 초 ‘디 워’와 나란히 개봉한 ‘기담’은 모처럼 볼만한 공포물이라는 반응에도 불구하고, 첫 주말을 넘기며 이렇게 됐습니다. 한 주 뒤 개봉한 ‘리턴’도 아직 정도는 덜하지만, 비슷한 처지가 되어가는 중입니다.

 현재 인터넷에는 두 영화에 각각 상영관 확보를 요구하는 네티즌 청원이 진행 중입니다. 다양한 영화를 볼 권리를 달라, 이름만 멀티(multi)플렉스지 대작만 집중 상영하는 온리(only)플렉스 아니냐, 등등의 의견입니다. ‘기담’의 제작사 도로시필름의 장소정 대표는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열혈 관객의 전화도 받았다는군요. “우리도 답답할 따름인데, 장기 상영할 수 있는 극장을 알아보고 있다”고 말합니다.

 스크린 독점이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지만, 갈수록 심합니다. 특히 개봉 직후 삽시간에 200개 안팎의 스크린이 더 늘어나는 것은 전에 없던 현상입니다. ‘스파이더맨3’를 시작으로 대기업 멀티플렉스에서 디지털 배급이 도입된 덕이 크지요. 스크린마다 영화필름(프린트)을 각각 영사기에 돌리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소스를 하나만 확보하면 여러 개 스크린에 다발적으로 상영할 수 있습니다. 기술혁신이 독과점을 심화시키는 셈입니다.

  ‘대박 영화’가 상영 횟수의 절반쯤을 차지하는 국내 극장가 시간표는 블록버스터의 본산인 미국에서도 보기 드문 현상입니다. 법적 규제보다 영화시장의 자정 능력을 기대하고 싶지만, 지금의 이 시장이 그럴 수 있을까 의문입니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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