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이 지난 지금, 스크린 수에 관한 한 ‘괴물’의 기록은 가볍게 갱신됐습니다. 5월 초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첫 타자 ‘스파이더맨3’가 680개 스크린에서 개봉해 첫 주말에 곧바로 816개로 늘었거든요.
두 번째 타자로 5월 말 개봉한 ‘캐리비안의 해적3’의 폭발력은 더 대단했습니다. 670개로 시작해 무려 912개까지 늘었습니다. 전국 1800여 개 스크린의 50%를 넘는 수치입니다.
특히 서울에서는 점유율이 65%에 달했다는 게 영화진흥위원회의 집계입니다. 전국의 극장 수(300여 개)로 환산하면, 극장마다 평균 세 개의 스크린에서 중복해 상영했다는 얘깁니다. 뒤늦게 7월 말부터 흥행 대열에 가세한 한국영화 ‘화려한 휴가’와 ‘디 워’도 500개 이상 대규모로 개봉했는데, 이들에는 못 미칩니다.
중복 상영하는 영화는 당연히 관객이 보기 편합니다. 30분 혹은 1시간 간격으로 상영이 시작되니, 일단 극장에 가서 먼젓번 상영이 끝날 때까지 2시간 남짓 길게 기다리지 않아도 됩니다.
그 반대가 ‘퐁당퐁당’이라고 부르는 교차 상영입니다. 실은 ‘퐁당퐁당’만 돼도 양반입니다. ‘퐁…당’도 많습니다. 상영시간이 아침에 한 번과 심야에 한 번, 이런 식이면 예매 없이 극장을 찾은 관객은, 아니 예매를 하려는 관객도 시간대가 맞지 않아 발길을 돌리기 십상입니다.
요즘 극장가에서는 오락성을 갖춘 공포영화 두 편이 이런 신세입니다. 8월 초 ‘디 워’와 나란히 개봉한 ‘기담’은 모처럼 볼만한 공포물이라는 반응에도 불구하고, 첫 주말을 넘기며 이렇게 됐습니다. 한 주 뒤 개봉한 ‘리턴’도 아직 정도는 덜하지만, 비슷한 처지가 되어가는 중입니다.
현재 인터넷에는 두 영화에 각각 상영관 확보를 요구하는 네티즌 청원이 진행 중입니다. 다양한 영화를 볼 권리를 달라, 이름만 멀티(multi)플렉스지 대작만 집중 상영하는 온리(only)플렉스 아니냐, 등등의 의견입니다. ‘기담’의 제작사 도로시필름의 장소정 대표는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열혈 관객의 전화도 받았다는군요. “우리도 답답할 따름인데, 장기 상영할 수 있는 극장을 알아보고 있다”고 말합니다.
스크린 독점이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지만, 갈수록 심합니다. 특히 개봉 직후 삽시간에 200개 안팎의 스크린이 더 늘어나는 것은 전에 없던 현상입니다. ‘스파이더맨3’를 시작으로 대기업 멀티플렉스에서 디지털 배급이 도입된 덕이 크지요. 스크린마다 영화필름(프린트)을 각각 영사기에 돌리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소스를 하나만 확보하면 여러 개 스크린에 다발적으로 상영할 수 있습니다. 기술혁신이 독과점을 심화시키는 셈입니다.
‘대박 영화’가 상영 횟수의 절반쯤을 차지하는 국내 극장가 시간표는 블록버스터의 본산인 미국에서도 보기 드문 현상입니다. 법적 규제보다 영화시장의 자정 능력을 기대하고 싶지만, 지금의 이 시장이 그럴 수 있을까 의문입니다.
이후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