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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호흡기 뗀 아버지’ 에 돌 던질 수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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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8월 10일자 14면에 실린 ‘뇌사 아들 호흡기 뗀 아버지 살인죄’란 기사를 읽었다. 20년 동안 진행성 근이영양증(근위축증)을 앓고 있는 큰아들이 뇌사 상태에 빠지자 입원 치료 중인 자식의 인공호흡기를 떼고 집으로 데려와 숨지게 한 혐의로 아버지에게 살인죄를 적용, 불구속 입건했다는 내용이다.

둘째 아들도 앓고 있는 진행성 근이영양증은 중추신경계나 말초신경계는 손상되지 않은 상태에서 근육 자체에 문제가 발생하는 질병이다. 유전적 성향을 갖는 질환이라는 것 외에는 현재까지 발병 원인을 몰라 완치 방법이 없는 병으로 알려져 있다. 유년기에 시작되는 골격근의 점진적 약화로 인해 결국 영구적 신체장애를 초래,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생활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어려운 살림살이에다 두 아들은 불치병을 앓고, 부인과 이혼한 처지인 이 아버지에게 어느 누가 ‘아들을 죽인 살인자’라며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식물인간이나 뇌사 상태에 빠지게 되면 환자 가족은 엄청난 병원비 부담 등 문제에 부닥치게 된다. 더 이상의 치료가 무의미한데도 법은 ‘생명 존엄성’이란 최고의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안락사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남은 가족의 무한한 희생을 강요하는 이런 제도에 불합리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안락사는 치료가 불가능한 환자를 적극적·소극적 조치를 통해 사망케 하는 것으로 아직 우리나라 법에는 명시적인 규정이 없다. 이 때문에 계속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종교적·윤리적·의학적·경제적 관점에서 각각 나름의 논리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환자의 소생 가능성이 가장 큰 쟁점이 돼야 한다. 환자의 의지와 가족의 동의, 병원윤리위원회의 객관적 검증을 거친다면 안락사를 악용하는 일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의 의료법도 시대에 맞게 개정할 필요가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안락사·존엄사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했으면 좋겠다.

 
이갑순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4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