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는 유가연동제(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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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상공자원부는 국제유가의 하락에 따라 국내 기름값을 내리는 유가연동제를 실시하겠다고 공표했다. 반면 재무부는 그렇게 되면 세수가 줄기 때문에 유류세를 대폭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이 두가지 상충된 정책이 불과 사흘 사이에 정부 경제부처에서 제각기 발표됨으로써 경제정책의 혼선과 국민생활의 불편이 증폭되고 있다.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도대체 기름값은 내리는 것인가,안내리는 것인가.
이런 혼선을 두고 정부 각 부처가 제각기 자기 일만 하다보니 그렇게 됐다고 변명한다면 정부의 정책조정능력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적어도 전 국민을 상대로 한 정책변경이 각 부처의 고집으로 오락가락한다면 그 정부나 정책을 신뢰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국민은 조삼모사의 대상이 아니다.
상공자원부가 기름값을 내리겠다고 한데는 상당한 이유가 있다. 작년말 OPEC 회의에서 감산합의가 실패한 이래 국제유가는 배럴당 15달러 이하로 내려갔으며,당분간 저유가체제가 계속될 전망이다. 때문에 국내 기름값을 국제유가에 연동시켜 종류에 따라 최고 10%,평균 4∼5% 내리기로 한 것이다.
한편 이렇게 기름값이 내려가면 기름에 부과되는 특소세와 교통세가 예상보다 적게 걷히기 때문에 부득이 이들 세금을 올리지 않을 수 없다는 재무부의 설명도 틀린 것은 아니다. 때문에 교통세를 1백50%에서 1백90%로 올리는 등 유류 관련세를 높게는 40%까지 올리겠다는 것이다. 재무부는 세금을 올리지 않으면 교통세에서만 약 6천억원의 세수결함이 발생하고,이렇게 되면 사회간접자본 건설재원 조성에 차질이 온다고 설명한다. 또 국내 기름값이 다른 나라에 비해 싸다는 점도 세금인상의 명분으로 설득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정부가 세수결함을 우선적으로 고려했다면 왜 유가연동제로 기름값을 내리겠다는 정책을 먼저 발표했느냐 하는 점이다. 이것은 정부내 부처간 정책조정능력이 결여돼 있다는 점을 만천하에 공개한 것이나 다름없다. 또 이렇게 되면 유가연동제가 과연 실효있는 제도인지도 의문일텐데 정부는 이를 어떻게 설명할지 궁금하다. 아마 기름값 연동이 아니라 유류세금 연동의 성격을 띠게 될 것 같다. 그렇다면 만약 국제기름값이 고유가로 반전될 경우 정부는 교통세·특소세를 내려 소비자보호와 물가안정에 기여할 것인가. 이런 난처한 문제의 발생은 현행 유류관련 세금의 탄력세율 30%가 너무 진폭이 크고,또 정부가 이의 적용을 자의로 하기 때문일 것이다.
유가연동제를 둘러싼 정책혼선은 어느 방식으로든 수습이 되고 합리적인 설명이 뒤따라야 국민의 동의를 얻을 수 있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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