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뭘하십니까>유행성출혈열 바이러스 발견 이호왕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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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인류문명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한국인은 그리 많지 않다.그동안 좁은 땅덩어리안에 잘난 사람도 꽤 많았다지만 세계인이 함께 알아주는 이는 특히 드물다.
李鎬汪박사(64).
정년퇴임을 1년 앞둔 미생물학교수(高麗大의대)로 한평생 바이러스와 씨름한 이 노학자를 기억하는 국민은 의외로 적다.
그러나 바로 잊혀진 이 노학자에 의해 말라리아.간염과 더불어세계 3대 전염병의 하나인 유행성출혈열의 원인바이러스가 처음 발견됐으며 李박사의 이름과 그가 명명한 한탄바이러스는 전세계 의학교과서에서 중요한 제목으로 다뤄진다.
「종속과목강문계」.중학교 생물시간에 나오는 린네의 생물분류체계다. 이중 한탄바이러스屬과 그 안에 포함된 한탄바이러스種.서울바이러스種은 모두 한국인에 의해 한국식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실제 출혈열이 자주 유행하던 한탄강 지명을 딴 것으로 李박사의 아호 역시 漢灘이기도 하다.
유행성출혈열(공식이름은 腎증후성출혈열)이 문제시되기 시작한 것은 6.25전쟁때로 철의 삼각지대에서 대치중이던 美軍중에서 2천여명이 발병해 이중 8백여명이 사망하면서부터다.出血熱이란 이름 그대로 고열과 함께 안구가 빨갛게 충혈되고 입안과 피부 곳곳에서 출혈이 나타나 심하면 사망하게되며 당시 병사들에겐 적의 총탄보다 더 무서운 공포의 괴질이었다.
지금도 우리나라에서만 매년 1천여명의 환자가 발생하고 滿洲.
북유럽일대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이 전염병의 정체가 李박사에의해 밝혀진 것은 지난 76년.이 질병의 매개체로 알려진 등줄쥐의 혈액에서 세계 최초로 바이러스를 분리,이를 전자현미경으로촬영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등줄쥐란 집쥐보다 훨씬 작은 크기며 등에 검은 줄이 난 쥐로주로 시골 야산이나 논둑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유행성출혈열은바로 이 등줄쥐가 배설한 오줌등에 포함된 바이러스가 공기를 통해 사람에게 감염된다는 것으로 李박사는 이를 알아내기 위해 지금까지 3천여마리의 등줄쥐를 사로잡아야 했다.
실험도중 이 병에 걸려 죽다 살아난 연구원이 있는가하면 실험실로 배달나온 음식점 배달원마저 감염돼 수위들이 이 무시무시한실험실을 당장 옮겨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고 李박사는 당시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그러나 李박사팀은 76년 한탄바이러스에 이어 82년 서울의 한 아파트 주민에게서도 유행성출혈열 환자를 발견하고 집쥐가 옮기는 새로운 서울바이러스를 찾아내 학계에 보고했다.그리고 마침내 92년 바이러스를 발견한 사람이 다시 그 바이 러스의 예방면역백신마저 개발해내는 의학사상 유례가 없는 쾌거를 올리는데 성공했다.
평생 학문 연구외에 한눈을 팔아본 적이 없고 한국인 노벨 의학상 후보 1순위라는 주위의 변죽 역시 달가워하지않는 李박사지만 몇가지 서운한 것이 있다.『부끄러운 얘기지만 제 연구의 절반은 미국정부의 몫입니다.』차마 자신의 입으로 밝히기 싫은 대목이란다.
유행성출혈열 연구는 애초부터 美國의 필요에 의해 시작됐다.6.25전쟁 당시 美軍 사이에 돌기 시작한 이 괴질의 연구를 위해 유엔사령부는 뚝섬에「출혈열연구센터」를 만들었다.이때 연구진중엔 노벨 의학상 수상자도 3명이나 포함돼 있었으 며 52년부터 65년까지 4천만달러라는 막대한 비용이 투입됐다는 것.
그러나 별다른 성과가 없자 美육군성은 美국립보건원 지원아래 일본뇌염 연구로 성가를 올리고 있던 李박사에게 출혈열 연구 프로젝트를 맡기고 본격적인 재정 지원을 하게됐다.
이때부터 92년까지 美육군성은 3백만달러 이상의 연구비와 시설 일체를 제공해왔다는 것이다.
李박사는 이때문에 북한으로부터『미제와 합심해 세균무기를 개발하려든다』는 비방까지 듣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70년대말만 하더라도 권투선수가 세계타이틀을 따면 전국이 떠들썩하게 환호하는 반면 전세계 주요 논문에 李박사의 연구 내용이 실리는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는 것.우리 정부의 지원도 80년대말에 와서야 겨우 이루어졌을 정도였다.
게다가 美국립보건원으로부터 연구비와 함께 지급된 李박사의 전용자동차(랜드로버)가 인천항을 통해 들어올 때도 말들이 많아 통관에 애를 먹었다고 한다.재벌이나 타는 외제차를 일개 학자가탄다는 것이 통관 관계자에게 납득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한탄바이러스 발견 당시 국내학계의 의심과 무관심 역시 李박사에겐 못내 섭섭한 일이었다.심지어 면전에서 연구 결과를 과대평가하지 말라는 무안까지 받은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李박사의 업적은 오히려 외국에서 먼저 인정을 받았다.타임誌. 워싱턴 포스트紙의 기자가 직접 찾아와 대서특필하기도 했으며 80년 외국인으로선 처음 미국 최고 공로훈장을 받기도 했다.
요즘들어 李박사는 더욱 바빠졌다.
지난달 23일 등줄쥐에서 바이러스를 최초로 분리해낸 東豆川市에서 유행성출혈열 기념비 제막식을 가졌으며 이달초엔 美열대의학회 초청으로 유행성출혈열에 관한 특별강연을 하고 명예회원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최근 이 질병에 관한한 안전지대로 알려진 미국에서도 나바호 인디언 보호지역에서 유행성출혈열로 유명 육상선수 부부가 사망해 충격을 주고있기 때문이다.이제 유행성출혈열은전세계 어디서나 출몰하는 전염병으로 밝혀진 셈이다.연구생활의 어 려움을 극복하는 비결에 대해 한 우물을 파는 학자적 소신을강조하는 李박사는 요즈음 젊은이들의 영악함을 나무란다.
『학문의 세계에서 눈앞에 보이는 이익에만 급급하는 자는 반드시 실패한다』며 보다 우수한 인력들이 아직도 척박한 기초의학에많은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했다.
골프(핸디7)와 베토벤 음악을 즐기는 李박사는 화랑을 경영하는 부인 金銀淑여사(62)와의 사이에 美國에서 인체공학.국제정치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두 아들을 두고 있다.
〈洪慧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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