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퍼레이드(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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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미국 LA의 코리아타운에선 19일 하루종일 「코리안 퍼레이드」가 벌어졌다. 이 행사는 지난 20년동안 해마다 LA 한인가를 누비면서 수만리 이역에서의 이민생활의 고달픔과 향수를 달래며 동족끼리의 단합을 다짐하고 세를 과시해 왔다.
이 행사에는 백인은 물론 흑인·히스패닉 등 각 소수민족사회 대표들이 초청되는 것이 관례다. 이들 이민족과의 협력과 화해를 위한 상징적 제스처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행사로 교포사회는 단합됐으며,인종간의 화목은 이루어졌는가. 들리는 소식은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못한 것 같다.
특히 흑인들과의 갈등과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 지난 86년 필라델피아의 한글도로 표지판 훼손사건,90년 뉴욕시 할렘과 브루클린의 한인청과물상에 대한 불매운동·시위의 확산,그리고 작년 4월 LA 한인상가 방화·약탈 등 해가 갈수록 악인들이 주로 흑인들에 의해 피격·피살되고 있다.
한­흑분규 내면에는 흑인들의 백인에 대한 불만이 깔려있다 한다. 백인들로부터 모멸적인 처우를 맏은 분풀이의 대상이 한국교포들이란 것이다. 『한국인을 공격하라』는 노래가 크게 히트한 것도 흑인사회다. 「한국인들이 흑인들을 도둑취급한다,흑인지역에서 돈을 벌고 쓰기는 백인지역에서 쓴다」는 것이 그들의 일반적인 불평이다.
인종간의 생활습관과 문화의 근본적인 차이에서 오는 이질감·거부감을 극복하기란 쉽지 않다. 언어의 완벽한 소통도 커다란 장벽일 것이다.
그러나 낯선 풍속에 적응하고 동화하려는 노력은 이민생활의 필수적인 도리일 것이다. 동족끼리만 상종하고 이민족에겐 배타적이란 인상을 주었다간 현지사회로부터 소외를 자초하게 마련이다. LA의 4·29폭동때도 현지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온 한인업소는 오히려 흑인들이 보호에 앞장섰다고 하지 않던가.
대대적인 행사나 단발성 기부행위도 나쁠 것은 없다. 그러나 평소애는 그들과 어울려 인간적인 정을 나누고 끈끈한 유대를 갖는 노력과 인내가 이민생활에서는 더욱 절실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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