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위와 나이(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우리 사회에서 윗사람과 아랫사람을 구분하는 기준은 매우 다양하다. 나이나 지위 따위로 구분되는가 하면 혈족간의 행열(항렬)이나 지식·신분 같은 것이 기준이 되기도 한다. 그 가운데서 가장 기초적인 구분기분으로 삼는 것이 나이다. 굳이 나이를 따져야할 일이 생길 때는 단 하루라도 먼저 태어난 사람을 윗사람으로 인정해주는 경우도 종종 있다. 동양적 도덕율의 기본인 다섯가지 인륜,곧 오륜이 「나이의 많고 적음을 인간사회에 있어 순서와 질서의 기본으로 삼아야 한다」는 장유유서를 군신유의,부자유친 등과 함께 삶의 중요한 덕목으로 꼽고 있는 것도 나이의 깊은 의미를 새삼 일깨운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나이는 많은데도 다른 기준으로서 부득이 아랫사람이 돼야하는 경우에 곧잘 부닥친다. 가까운 친적 가운데 나이가 아래인 아저씨나 할아버지가 있을 수 있는가 하면,나이 어린 스승에게 배워야 하는 나이가 많은 제자가 생기기도 한다. 이 경우 피차가 껄끄럽기는 하지만 윗사람이라고 해서 나이 많은 아랫사람을 마구 대하지 못하는 것이 또한 우리네 전통적 관례다. 말투에서도 「해라」가 아니라 「하게」 정도로 한단계쯤 높여주는 것이 나이많은 아랫사람을 대접하는 좋은 방식이 되는 것이다.
문제는 직장생활이나 사회생활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계급사회에서 지위나 직위가 윗사람과 아랫사람을 구분하는 기준이 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나이많은 아랫사람을 두게되는 경우나,나이적은 윗사람을 모셔야 하는 경우 피차의 나이를 전혀 무시할 수 있게느냐 하는 점이다. 여러가지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피차가 예의와 겸손을 지키는 길만이 해결의 열쇠일 뿐이다.
얼마전 서울 어느 지청의 한 젊은 검사가 어머니뻘의 여인을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하는 과정에서 반말과 욕설로 다그쳤다는 보도가 눈살을 찌푸리게 하더니 엊그제는 수원지검의 한 20대 검사가 피의자 앞에서 나이가 스무살이나 위인 경찰관에게 폭언을 퍼붓고 손찌검까지 해 물의를 빚고 있다. 일의 내용이야 어떻든간에 거의 아버지뻘인 하급자에게 손찌검을 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젊은 검사는 예의와 겸손을 저버렸다고 볼 수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