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쇄신 계기되길(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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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덕주 대법원장의 사퇴는 불가피한 결정이었다. 공직자의 재산공개이후 사법부 역시 국민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아왔다. 예상과는 달리 평균 재산이 다른 부나 기관에 못지 않게 많았을 뿐 아니라 재산내역을 보아도 탈세나 투기의 의혹을 살만한 경우가 적지 않다.
어느 부문보다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사법부로서는 사회의 그러한 시선과 압력을 지난 시대의 관행만을 들어 변명하고 방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헌법에 보장된 법관의 지위가 여론에 의해 흔들리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 측면이 있긴 하지만 국민의 신뢰없이는 사법질서가 존립하기조차 어렵다는 점 또한 사실인 이상 자정작업은 불가피한 일이라 본다.
그러나 사법부의 수장부터가 도덕적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마당에선 사법부가 어떠한 반성이나 개혁안을 내놓아도 결코 그 설득력은 클 수 없을 것이다. 사퇴한 김 대법원장은 86,87년 단 두햇동안 변호사생활을 했으나 86∼88년 사이에만 주거주택을 제외하고도 8건의 부동산을 사들였다. 누구라도 요즘 사회적 물의가 되고 있는 법조계의 비리인 전관예우나 소득의 불성실한 신고의 결과라고 의심할 만한 내용이었다.
김 대법원장의 자퇴는 사법부 개혁의 걸림돌을 없애준 것인 동시에 앞으로 있을 자정과 개혁작업에 하나의 기준을 제시한 것이라고 본다. 물론 지난시대의 보편적 관행이 어떠했다는 것을 어느 정도는 감안해야할 것이고,법관도 개인적으로는 너와 나와 똑같은 생활인이라는 점도 인식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역시 법관은 그 직업적 특성상 청렴해야 하고 남달리 높은 도덕적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 최근 일부 법관들이 그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법복을 벗는 일이 많아졌다. 물론 직접적 원인은 경제적 사유이겠으나 따지고 보면 사법부가 국민의 존경을 받는 명예로운 공직이 되지 못하고 있는데도 원인이 없지 않다. 원칙대로,법대로 살면 부와는 거리를 둘 수 밖에 없는데 명예마저 누릴 수 없다면 계속 법복을 입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법관은 부와는 인연이 멀더라도 국민의 존경을 받는 명예는 유지할 수 있는 직종이어야 한다. 그래야 생활의 안락보다는 명예를 택한 사람들이 사법부를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이고,또 그래야만 사법부가 말 그대로 정의의 최후보루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큰 아픔을 겪긴 하겠지만 그런 점에서 사법부는 이번 일을 계기로 사법부를 명예의 전당으로 만들기 위한 윤리적·정치적 쇄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우리는 우선 앞으로 있을 윤리위원회의 결정을 지켜보고자 한다. 그러나 단순히 재산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사법부를 비난해선 안될 것이다. 지금은 사법부의 자정의지를 북돋워주고 하루 빨리 비판의 수렁에서 벗어나 제 모습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격려도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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