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단」의 명예훼손(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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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연못의 개구리가 돌을 던지는 아이들에게 항의했다는 우화가 있다. 『당신은 심심풀이로 혹은 장난스럽게 연못에 돌을 던지지만 그 돌에 맞아죽는 개구리들도 있다』는 것이다. 앞뒤 생각없이 해버리는 행동에 의해 선의의 피해자가 생길 수도 있다는 의미가 함축돼 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자신은 아무런 잘못이나 관련이 없는데도 엉뚱하게 얽혀들어 피해를 보는 경우에 종종 부닥친다. 이 경우 나중에 진실이 밝혀진다 해도 한번 잃어버린 명예는 쉽사리 원상회복이 되지 않는다. 사회에 커다란 변혁이 일어나게 되면 피해자들이 속출하게 마련이다. 어느 시대,어느 사회에서나 마찬가지다. 일부 개혁론자들은 개혁의 과정에서 선의의 피해자들이 생기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하지만 막상 당사자들의 입장에서는 복통할 노릇이요,마른 하늘에 날벼락 맞는 꼴이다.
그래서 「잘된 개혁」이란 소리를 들으려면 억울한 피해자가 없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현대사에서 잘못된 개혁의 대표적 예로 꼽히는 것은 1966년 중공의 이른바 문화대혁명이다. 당시 모택동을 등에 업은 홍위병이란 이름의 10,20대 젊은이들은 「개혁」의 명분아래 수많은 고적과 유물을 마구 파괴하는가 하면 죄없는 사람들을 무차별 살상하는 등 나라 전체를 혼란에 빠뜨렸다.
모택동이 「혁명은 모든 것을 정당화하며 그것을 수행하기 위한 일체의 불법행위도 죄가 없다(혁명무죄)」며 그들에게 거의 무제한의 자유를 부여한 탓이다.
지난 5월 교육부가 사상처음으로 1천여명의 대학부정입학 학부모 명단을 공개한뒤 이런저런 잡음들이 끊이지 않더니 그로부터 한달뒤 「그중 13명은 학생 및 학부모의 책임이 전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는 정정결과가 발표됐다. 그러나 당초의 명단공개로 인해 파혼당한 가정이 있는가 하면 주위의 눈총이 따가워 직장을 그만두고,쇼크로 심장병을 얻는 등 파문은 가라앉지 않았다. 이 사건을 놓고 어떤 기자는 「홍위병식 개혁이 돼서는 곤란하다」는 표현을 썼다.
정정발표 속에 포함된 전 문교장관이 이사장으로 있던 교원공제회가 집단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 주목을 끌고 있다.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하는 「개혁의 정당성」여부를 가늠하는 잣대가 될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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