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위 파행 궁색한 여야변명/오병상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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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29일 오후 열린 국회 노동위모임은 민자당의원이 전원 불참한 가운데 노동부장관과 야당의원들만 참석했다. 야당이 집단으로 불참한 상임위는 종종 있었지만 여당이 불참한 경우,특히 장관과 야당의원들만 참석한 회의는 아무래도 기이하다.
여당의원들이 불참한 이유는 외견상 「여야간의 합의가 되지않았다」는 것이었다. 여당측 간사인 최상용의원은 합의되지 않은 이유를 두 가지로 내세웠다. 첫째 이날은 같은 노동위 소속 박제상의원이 민자당에 입당해 지구당 개편대회를 치르기에 참석할 시간이 없으며,또 3일후인 7월2일 임시국회가 열리니까 그때가서는 논의해도 된다는 얘기다. 따라서 이날 회의는 『야당인 장석화 상임위원장이 「독단」으로 강행한 회의인만큼 「불참」이라는 말조차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반면 야당은 『이미 합의했는데 여당이 일방적으로 불참했다』고 주장한다. 장 위원장은 『29일 오후 2시로 이미 여야간사와 합의한 것인데 뚜렷한 이유없이 여당이 불참한데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관계자들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대략의 전후사정은 이렇다. 노동위는 매달 넷째주 화요일(이번달의 경우 22일)을 정례회의일자로 정해뒀다. 그런데 이번에는 장 위원장이 이기택대표를 수행해 16일 유럽으로 떠나 김대중 전 대표를 만나고 28이 귀국하기로 되어있어 회의를 열기 힘들게 됐다. 그래서 여야간사들은 귀국 다음날인 29일쯤 하자는 대략의 합의를 한뒤 시간 등은 추후에 더 논의키로 했다. 그런데 마침 이날 박 의원의 개편대회가 잡혔다. 그러자 여당측은 난색을 표명했고,여야간사는 30일로 연기하는 방안을 협의했다. 그러던중 여당은 7월초 국회가 열린다는 이유로 30일 회의마저 거부했다. 장 위원장은 28일 오후 6시쯤 귀국해 이 사실을 보고받고는 29일 회의강행을 지시했다. 여당은 불참했고 성원이 안 되는 바람에 정식회의는 열리지 못하고 간담회 형식으로 진행됐다.
때문에 일단의 책임은 위원장을 포함한 야당에도 있다. 관례대로 간사간에 일정이 합의되지 않았음에도 위원장은 파행을 강행했다. 그럴 정도로 중요하고 시급했다면 당대표수행 일정을 줄이고 서둘러 귀국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여당에 있다. 현대 노사분규가 「신경제의 성패를 가를」 심각한 사인인만큼 이날 회의는 동료의원의 지구당 개편대회보다 중요하고,7월 임시국회로 넘길만큼 한가한 사안도 아니다. 혹시 이 장관의 노동정책에 대해 야당보다 더 비판적인 여당이 갈등을 노출하지 않으려고 피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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