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각은 안도보다 분발을(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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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영삼대통령이 3일 회견에서 내각가능성을 부인하고 장관을 자주 바꾸지 않겠다고 한데 대해 국무의원들이 안도하는 모습이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국무회의 도중 대통령회견을 TV로 본 국무위원들은 이 대목에서 『깊은 감명을 받는 분위기였다』는 것이 공보처장관의 전언이었다.
우리도 물론 장관이 업무를 파악할만하면 바뀌곤 하는 잦은 개각이 안좋다는 대통령의 뜻에 동감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이런 말은 어디까지나 그의 내각운영에 대한 소신이자 일반론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대통령의 그런 소신에도 불구하고 능력·자질에 현저한 문제가 드러나는 장관이나 그냥 넘길수 없는 하자나 실수가 있는 장관이 나오면 도리없이 바꿔야함은 당연한 일이다. 모르긴 몰라도 대통령 발언에 안도한 장관 중에는 제 발등이 저린 사람도 있었을 법하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장관들이 안도하기 보다는 좀더 분발하고 밖에서 내각을 보는 눈이 어떤지 이 기회에 다시 한번 생각해보기를 주문하고 싶다.
지금 세간에는 개혁작업을 대통령이 거의 혼자 끌고가다시피 한다는 시각이 많다. 내각은 무기력하고 청와대 눈치나 살핀다는 소리도 적지 않다. 심지어 공보처가 발행하는 「국정신문」까지도 개혁의 한가운데 있어야 할 장관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는 등 이례적으로 장관들을 질타했다. 우리는 팀웍을 잘 이뤄나가야 할 내각의 한 부처가 다른 장관들을 공격하는 이런 방식에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오히려 「국정신문」에 이런 기사가 나오는 것 자체가 지금 내각이나 장관들 중에 문제가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지금 내각 또는 각 부처차원에서 할일은 산적해 있다. 지금까지의 사정작업은 이제부터 해야할 본질적 개혁작업의 정지에 해당하는 것이다. 사정으로 닦은 터위에 교육·환경·교통·경제회생 등 개혁의 본질작업을 서둘러 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 어느 구석에도 본질개혁을 위한 진지한 모색이나 긴장된 추진모습을 보기 어렵다. 국민이 일상적 고통을 겪고 있는 교통·환경문제를 개선해보려는 움직임도 없고,곧 닥칠 대입수학능력시험을 지금의 교육부가 과연 제대로 치러낼까 하는 심각한 우려까지 나오는 판이다.
빨리 내각과 각 부처의 일하는 체제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사정은 사정대로 하되 분야별로 본질적 개혁작업을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실천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그리고 장관들은 소관분야가 안고 있는 현안들을 방치만 하고 있지 말고 개혁의지를 갖고 과감히 대들어 하나씩 해결책을 내놔야 한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내각의 팀웍을 조정·독려하고 각종 개혁정책과 현안들의 우선순위·추진방법 등에 관해 일정한 「일하는 틀」을 만들어주는게 급하다. 장관들은 자주 안바꾼다는 것이 주어진 업무를 제대로 못해도 장관직을 유지시켜준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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