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철과 박태준씨의 경우(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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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포철과 박태준씨에 대한 국세청의 세무조사 결과는 여러모로 착잡한 느낌을 갖게한다. 자랑할만한 우리나라의 대표적 기업인 포철에서까지도 탈세가 있었고,국제적 명성을 가진 「철의 사나이」라는 박씨 역시 뇌물을 받고 탈세했다는 발표내용은 그동안 사정작업에서 드러난 우리 상부층의 부패상을 또 한번 확인해주는 것이다. 중진 정치인으로서 한때 대통령후보 물망에까지 올랐던 박씨가 3백60억원에 달하는 거대 재산을 형성하고 그중 2백억원 이상을 타인명의로 분산 소유하고 있음을 볼때 새삼 실망을 금하기 어렵다. 이런 국세청의 발표가 나온 이상 박씨는 석연찮은 장기 외국체류를 끝내고 즉시 귀국해 해명할 것은 해명하고 법에 따른 책임을 질 것은 져야 마땅하다. 정·재계에서 차지한 비중을 생각하더라도 공인으로서의 그의 마지막 처신이 떳떳하기를 우리는 바란다.
그리로 우리는 이번 국세청의 세무조사에 대해서 정부측도 몇까지 추가적인 설명을 해야할 대목이 있다고 본다. 우선 이번 포철에 대한 세무조사가 박씨에 대한 정치보복 인상이 짙다는 일반의 의혹이다. 당초 지난 2월 국세청은 포철조사를 시작하면서 정기 법인세 조사일뿐 정치적 이유는 없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그러나 정기 법인세조사 치고는 이례적으로 몇차례씩이나 조사기간을 연장했고 법인조사에서는 보기 드물게 박씨 개인의 재산형성 과정을 추적해 재산목록까지 공개했다. 이런 유별난 조처는 박씨의 지난 대선과정에서의 정치적 처신을 생각할 때 정치보복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불러일으키게 마련이다. 또 박씨에 대한 법적용에 있어서도 조세범 처벌법이 아니라 훨씬 중형인 특가법을 적용하는 등 전반적으로 박씨 개인을 겨냥한 표적조사와 꿰맞추기식 조사결과가 아니냐는 시선이 많다.
우리는 대대적인 사정작업을 해나가는 이때 박씨나 포철이라고 예외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혹시라도 정치적 보복 수단으로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이용되거나 정적이라고 해서 형평에 어긋나게 더 무거운 처벌을 받아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사정이나 세무조사가 정치적 고려나 입김으로 좌우돼선 안됨은 물론이다. 공교롭게도 지금껏 사정의 도마위에 오른 일부 인물이 과거 현정부와 정치적으로 맞서던 사람들이었다. 정부는 이런 점을 고려해 세간의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에 대해 국민이 납득할만한 설명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국민경제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거대기업 포철이 이번에 비록 상당한 신뢰손상을 입었지만 하루빨리 복원력을 보여주기 바란다. 저질러진 비리는 응당 법에따라 처리돼야 겠지만 포철이라는 기업자체는 정상가동되고 발전해 나가야 한다. 연간 매출액이 7조4천억원이나 되는 포철이 그토록 장기간 치밀한 세무조사를 받고도 고의적 탈세나 비자금조성이 발견되지 않는 것은 불행중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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