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정몽헌 회장 4주기 ‘유동성 교훈’은 잊지 말아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1호 10면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이 투신 자살한 지 어제(4일)로 4주년이 됐다. 이 사건은 정경유착의 종말, 리더십의 중요성 등 한국 기업사에 많은 교훈을 남겼다. 그중에서도 경영에서 유동성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우리에게 깨우쳐 줬다. 유동성(流動性· Liquidity)이란 ‘내 자산을 즉각 현금으로 전환할 수 있는 정도’를 나타내는 경제학 용어다.
정 회장은 2000년 1월 형인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을 제치고 아버지이자 창업자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후계자로 임명됐다. 하지만 현대를 글로벌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꿈을 펼치기도 전인 그해 4월부터 그는 유동성 문제와 씨름해야 했다.

현대투자신탁운용이 자본잠식으로 자금난에 몰렸기 때문이다. 당시 정 회장은 유동성을 우습게 봤다. 현대는 자산규모로 따져 재계 1위 기업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는 형제간 경영권 분쟁과 실속 없는 대북사업으로 신용까지 잃었다. 현대건설·현대전자(현 하이닉스) 등 그룹의 핵심 계열사까지 유동성 문제가 번졌다.

정 회장은 “현대건설이 보유한 서산농장 땅만 팔아도 되고, 이라크에서 받을 미수금만으로도 충분한데 무슨 놈의 유동성이냐”고 역정을 냈다고 한다. 그는 30년 가까이 살던 성북동 집을 처음으로 저당 잡히고 10여억원을 빌리는 수모를 당하고서야 유동성의 냉혹함을 깨달았다. 현대건설과 현대전자도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채 헐값(?)으로 채권단의 손에 넘겨줬다. 정 회장은 대북송금 검찰수사를 받던 중 자살했지만 유동성 문제가 그의 목을 끊임없이 조였던 게 사실이다.

요즘 세계 경제의 화두도 바로 유동성 문제다. 한때는 나라마다 저금리 정책으로 돈이 넘쳐나면서 과잉유동성이 문제였다. 주택가격 버블이 생긴 것이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도 이와 관련이 있다.
사정이 이쯤 되자 각국은 고금리 정책으로 기조를 바꿀 태세다. 여기저기서 돈줄이 조여지고 있다. 앞으로는 기업이건 개인이건 신용경색을 우려해야 한다는 얘기다. 자산은 많은데 현금이 없어 부도 내는 흑자 도산이 속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주

3일 미국 7월 실업률=월가가 예상한 4.5%보다 높은 4.6%로 나와 이날 뉴욕 증시 급락의 빌미가 됐다. 새 일자리 창출 규모도 예상치인 13만3000개보다 낮은 9만2000개에 그쳤다.
 
▶이번 주

7~8일 미국 연준 FOMC 회의=기준금리를 현 5.25%에서 동결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최근 유동성 축소 등 자금시장 동향과 고용지표 악화 등을 이유로 하락을 점치는 쪽도 있다.

9일 한은 콜금리 결정 회의=지난달 금리를 올린 한국은행이 추가로 금리 인상에 나설지 주목된다. 지금까지 2개월 연속 금리를 올린 적은 없었다.

9일 통계청 7월 소비자 기대지수 발표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