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과 혁명,인치 법치 논쟁(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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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6일에 열린 「김영삼정부 개혁 1백일정책토론회」에서 개혁이냐 혁명이냐,인치냐 법치냐로 열띤 공방전이 벌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이 논쟁에 깊은 관심을 보이는 까닭은 논쟁의 수사학적 표현이 아니라 새 정부의 개혁방향이 과연 어디에 초점이 맞춰져있나를 확인하는데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논쟁의 방향 자체가 문제의 핵심을 비켜났거나 개혁의 개념설정 자체에 뭔가 잘못되었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것의 가장 큰 이유는 첫째,유례없는 공명선거를 통해 그것도 중산층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 선출된 30년만의 문민대통령이 어째서 민주적 개혁이 아닌 혁명적 통치자가 될 수 있느냐는 물음이 제기될 수 있다.
새 정부의 개혁 주체세력들은 굳이 「혁명적」이란 용어를 자주 쓴다. 혁명적 상황이란 초법과 탈법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김영삼대통령은 지금껏 많은 개혁을 짧은 시간에 시도하고 있지만 결코 초법적이거나 탈법적인 조처나 지시를 내렸다고 보지 않는다.
그런데 어째서 대통령을 보좌하는 입장에 서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대통령의 초법적 입장을 강조하고 있는지 그것이 또다른 물음으로 떠오를 수 있다. 『법과 제도의 완비를 기다렸다가 개혁을 하자는 것은 개혁을 하지 말자는 것과 같다』는 식의 주장은 앞으로 법과 제도를 벗어난 초법적 개혁을 생각하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법과 제도를 주장하는 쪽은 반개혁적 수구세력이고 대통령 개인의 결단식 개혁만이 진정한 개혁인양 내세우는 논리 또한 법치 아닌 인치의 가능성을 스스로 인정하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지금껏 새정부가 벌인 사정과 개혁은 적어도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혁명적 조처는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법과 제도가 있으면서도 지켜지지 않았던 권위주의 시대를 청산하고 법과 제도를 회복하는 과정인 것이다. 법과 제도를 무시한 비정상적 상황에서 법과 제도에 의한 정상적 상황으로의 회복이 곧 오늘의 새정부가 하고 있고,또 계속해야할 과제인 것이다. 법과 제도를 무시하고 공인이 거대한 치부를 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법의 심판이 준엄한 것이다. 법을 지키는 검찰이 검은 돈을 정기적으로 상납받았다는 의혹이 있기에 이들의 부정을 들추고,또 서로가 봐주고 축소하려는 기미가 보이니 대통령의 추상같은 지시로 한점 의혹없이 수사를 벌이도록 한 것이다. 이 모두가 법의 올바른 집행과 형평을 요구하는 법치의 길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권위주의 시대를 청산한 문민정부란 법과 제도의 원상회복과 새 시대에 맞는 법과 질서의 개혁이 당면한 목표이고 과제인 것이다. 이를 무시하고 혁명적 결단과 초법적 개혁을 능사로 아는듯한 모순된 논리를 펴고 있으니 개혁의 실체와는 거리가 먼 혁명과 개혁,인치냐 법치냐는 쓸모없는 논쟁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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