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장 꿈꾸는 초선의 부대변인 오장섭(의원탐구:3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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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약력◁
▲충남 예산출신(46세) ▲한양대 ▲대산건설 대표이사 ▲크로스 엔지니어링 대표이사 ▲오성장학회 이사장 ▲충남체육회 부회장 ▲14대 의원 ▲민자당부대변인
◎생활정치 실험중/“민심 읽어보니 권위의식·술수란 안통해요”/틈나면 영어·컴퓨터 공부
민자당 부대변인 오장섭의원은 성공한 보통사람이다. 그는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빈손으로 충남 제일의 건설업체인 대산건설을 일으켜 38억원의 재산을 공개할만큼 성공했다. 그는 해방직후 농사로 먹고살기 힘들어 비단행상을 하던 집안의 장손이자 가문의 종손으로 태어났다.
자라면서 공부 잘하고 친구도 많은 꼬마대장이었다. 종손이라 「제대로 키워야한다」는 집안의 기대를 안고 당시로서는 어려운 유학길에 나서 명문 대전중학교에 합격했지만 어려운 살림으로 진학을 포기해야만 했던 시련도 있었다. 그당시 낙담과 부족한 영양상태등으로 눈병을 심하게 앓기도 했다.
앞을 잘 볼수 없어 할머니 손을 잡고 학교에 다녔으며,동생이 대신 읽어주는 책으로 무료함을 달랬다. 시골병원에서 몇차례수술을 했지만 눈병은 낫지않았다. 그래서 그는 다섯번 수술을 받은뒤 수면제를 몰래 먹고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많지않은 양을 먹었고 다행히 어렸기에 깊고 어두운 잠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중학을 고향에서 마친후 다시 외지인 홍성의 홍성고등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했지만 자살을 기도한 후유증이 남아 반신의 신경이 마비돼 쓰러졌다.
온 집안에 난리가 났다. 『종손 죽이겠다』며 『공부 다 때려치우고 고향으로 돌아오라』는 엄명이 떨어졌고 결국 예산농고로 전학했다.
한양대를 졸업하고 회사원으로 평범하게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여전히 좋지않은 건강과 「고향을 지켜야한다」는 종손의 의무때문에 고향으로 돌아와 과수원을 꾸리기도 했다.
똥장군을 지고 거름주는 일이며,사과나무 가지치기에 이르기까지 흙과 더불어 살면서 건강도 좋아졌다. 그가 자신의 삶을 제대로 시작한 것은 30세가 된 76년 숙부가 운영하던 대산건설에 서기로 들어가면서 부터다.
이후 사장이 되기까지 그는 되찾은 건강으로 이전까지 누리지 못했던 삶을 한꺼번에 살기 시작했다. 하루 3∼4시간씩 자면서 토목건설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이사가 되면서 본격 경영을 맡기 시작해 한해에 10만㎞이상을 운전,전국을 누볐기에 해마다 새차를 구입해야할 정도였다.
휴일에도 교회를 다녀오는 시간외에는 현장에 머물렀다. 마침내 대산건설은 충남제일의 건설업체로 전국순위로도 50위권에 진입했다. 그동안 그가 이룬것은 집안을 일으키고 남들을 돕기 시작한 것이다.
85년 청년회의소회장을 맡으면서 남을 도울 일이 더 많아졌다. 선뜻 선뜻 내미는 손 쓰임새가 넉넉했던지 충남체육회 조정협회이사·보이스카우트 충남지회장등의 감투도 따랐다.
개인적으로 해오던 오성장학회를 법인으로 만들어 내놓고 남을 돕기 시작한 것은 89년이다.
이미 당시부터 그는 「더 큰 일」을 꿈꾸기 시작한 것이다.
꼬마대장시절부터 『네 성격에는 정치인이 맞다』던 주위의 공치사가 점점 현실로 다가왔다.
고향 예산을 떠나지않고 착실히 사업을 일으키면서 주위를 끊임없이 포섭(?)해온 그는 마침내 92년 민자당공천을 얻을 수 있었으며,그동안 들인 공덕으로 예산에서 무난히 첫도전에 금배지를 달 수 있게 됐다.
대산건설의 경영에는 손을 뗐다. 그는 『초선인만큼 배우는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자세다.
지난해엔 정세분석위원으로 정치권 돌아가는 사정을 들으면서 정치에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예결위원으로 나라살림을 훑어 보기도 했다. 요즘은 부대변인으로 정치인이 소홀히 할 수 없는 언론을 배우고 있다.
동시에 동료의원들의 연구모임인 「한백회」에 참석해 강의를 듣거나 토론을 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시내학원에 나가 영어·컴퓨터까지 배우고 있다.
지역구의원으로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지역구관리다. 국회개방후 가장 많은 지역구민을 맞아들인 선량이 오의원이다.
적게는 마을 노인회 십여명,많게는 어머니합창단 2백여명에 이르기까지 매주 2∼3팀이 그의 안내로 국회를 돌아본다.
그는 초선으로 배우고 재선으로 익혀 언젠가는 지방자치단체장을 해보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본격적인 삶을 살기 시작한지 13년만에 유수 건설업체의 사장이 되고,16년만에 국회의원까지 됐지만 그는 여전히 고위관료출신의 권위의식이나 정치판에서 자라온 프로정치인들의 술수를 모르는 보통사람이다.
지금까지의 정치와 다른 「보통사람의 정치」를 실험중인 그가 과연 꿈을 이룰지는 의문이다.
어쨌든 새시대 새정치를 기다리는 요즘 그는 분명 새로운 정치인의 한 모델이 될 것으로 보인다.<오병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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