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새겨야할 가정의 의미(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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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해마다 찾아오는 「가정의 달」이지만 이번 5월을 맞는 감상은 각별한 데가 있다. 죽어버린 듯하던 잿빛 나뭇가지와 마른 풀 위에 눈부시게 돋아나는 연록색 새싹을 보면서 겨울동안의 끈질긴 기다림과 인고 뒤에 오는 부활과 소생의 환희를 노래하는 것은 당연한 정서일 것이다. 그러나 이 5월은 소생한 만물이 제대로 성장해서 결실하고 다시 쇠잔하는데에 엄밀한 자연의 섭리와 이에 순응하는 노력이 전제됨을 새삼 일깨워 준다.
5월을 「가정의 달」로 정한 것은 인간의 새싹이라고 할 어린이와,이들의 성장과 발달에 자양이 되는 어버이와 스승을 격려하고 기리는 날들이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가정의 달」에는 이들 어버이와 스승들은 지금 제대로 얼굴을 들 수 없어 개탄과 자괴를 금치 못한다.
왜곡된 자식 사랑과 지나친 교육열 때문에 거액의 뇌물을 주고 자식을 대학에 부정입학시킨 학부모들의 추태는 바로 그 자녀들을 수치와 절망의 나락으로 밀어넣었다. 비록 부정입학 사실이 폭로되지 않은 경우일지라도 부정과 비리에 관련된 학생 당사자가 겪어야할 마음의 갈등과 수모는 평생을 두고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로인해 그들이 갖게될 뒤틀린 사회인식이나 가치관은 건전한 사회의 구축에도 유해한 요인이다. 무모하고 맹목적인 부모들의 교육열은 결국 자녀와 사회를 함께 망치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부정과 비리사건이 터질 때마다 가장은 한결같이 본인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발뺌하면서 자기 아내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가장이 밖에서 「큰일」을 하는데 「하찮은」 집안일에까지 일일이 신경을 쓸 수 있겠느냐는 투다. 그래서 부정입학도,불법적 땅투기도 모두 본인 몰래 아내가 저지른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일로 해서 패가망신하면 그것이 어찌 하찮은 일이겠는가. 가정이 쑥밭이 되고 나아가 사회의 기강과 안정을 흔드는 일이라면 가장으로서의 책임은 물론 사회적인 문책도 피할 수 없다.
가정은 사회를 구성하는 기초적인 단위집단이기 때문에 가정문제가 결코 가정에 국한되지 않고 그 파장은 사회 전반에까지 미칠 수 있다는 실증을 우리는 지금 체험중이다. 가장들은 사회활동에 앞서 자기 가족,자기 집안일부터 점검하고 단속하는데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가족들과 항상 대화하는 습관을 가져야 하고,가족의 고민과 자기 가정이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소상히 파악하고 해결하는데 가족 전체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대학』의 명언은 특히 이번 가정의 달에 가장들이 새삼 음미해야 할 경구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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