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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미각의 지존 된 생쥐 “당신들이 요리를 알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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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난관은 주인공 레미가 다름 아닌 쥐라는 것이다. 요리솜씨는커녕 존재 자체만으로도 손님이 기겁하고 식당을 문 닫게 만들기 십상이다. 이 애니메이션의 기막힌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일본만화든 국산드라마든 숱하게 보아온 요리사의 성공담 중에도 단연 극적이고 독창적이다. 극적인 드라마를 롤러코스터 액션과 함께 풀어가는 솜씨 역시 빼어나다. 썰고, 휘젓고, 끓이기에 숨가쁜 고급 프랑스 식당 주방에서 레미가 이리저리 몸을 감추는 장면은 피 한 방울 흘리는 일 없이도, 말 그대로 숨막힐 듯한 장면을 연출한다.

 이 같은 액션의 쾌감과 드라마의 극적 조합은 마무리로 묘한 감동의 맛을 더한다. 이 사람, 아니 쥐 레미의 성장담이자 성공담은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꾸준히 되새기면서, 남들의 몰이해와 편견을 반전시키는 과정이다. 그 진심은 극중에서 창작자를 짓밟기 일쑤였던 잔혹한 비평가마저 참회하게 만든다. 한마디로 ‘라따뚜이’는 어떤 소재든 감동과 재미를 고루 쥐락펴락해 온 애니메이션 명가 픽사의 이름값에 준하는 수작이다.

  탁월한 후각과 미각을 지녔으되 사람이 아니라 쥐일 따름인 레미는 유명 요리사 구스토의 철학, 즉 ‘누구나 요리를 할 수 있다’는 구호에 희망을 얻는다. 하지만 구스토는 비평가의 혹평에 충격을 받아 세상을 떠나고, 레미 역시 쓰레기통 대신 여염집 부엌을 들락거리다 가족들과 헤어진다.

 실의에 빠진 레미가 하수구를 흘러 도달한 곳은 에펠탑이 보이는 파리, 바로 구스토의 식당 코앞이다. 주방에 숨어 들어간 레미는 끓고 있던 수프에 본능적으로 솜씨를 발휘한다. 이 모습을 유일하게 목격한 사람이 링귀니다. 주방의 위계질서에서 맨 밑바닥인 청소부로 갓 채용됐다. 실은 유명 요리사의 핏줄이지만 링귀니 자신은 이런 사실을 모를 뿐더러 요리에도 전혀 재능이 없다. 다른 사람들이 이 탁월한 수프가 링귀니의 솜씨인 줄 여긴 덕에, 링귀니는 레미와 2인1조, 아니 쥐와 인간의 비밀스러운 공조체제를 구축한다.

 주방의 이런저런 에피소드는 퍽 전형적이다. 구스토에 이어 주방을 책임지는 최고 요리사가 전통의 ‘손맛’을 프랜차이즈 냉동식품의 ‘돈맛’으로 바꾸려는 점에서 악당으로 묘사된다거나, 남성 우월적인 주방 분위기에서 살아남으려 분투하는 유일한 여자 요리사가 남자 뺨치는 독종이라거나 하는 등등의 묘사는 식당업계를 다룬 이야기에 곧잘 등장하는 대로다. 암만 화려한 기교를 자랑하는 프랑스 요리도, 그 궁극의 감동은 어린 시절 맛본 음식에 못 미친다는 설정 역시 낯익다. 제목 ‘라따뚜이’는 바로 이런 순박한 프랑스 요리의 이름. 쥐(rat)와 ‘휘젓다’를 뜻하는 프랑스어의 합성어다.

 ‘라따뚜이’는 이 같은 전형성과 독창성을 솜씨 있게 버무린다. 애니메이션 특유의 표현력으로 인물의 움직임에 실사로는 불가능한 리듬감을 더하고, 애니메이션의 진보한 기술력으로 실사못지 않은 음식의 질감을 더했다. ‘저주받은 걸작’으로 불렸던 ‘아이언 맨’에 이어 ‘인크레더블’로 화려하게 재기했던 브래드 버드가 감독을 맡았다. 26일 개봉. 전체 관람가.
 
주목! 이 장면 캐릭터 중 단연 개성이 돋보이는 것은 무자비한 요리비평가 안톤 이고다. 한눈에도 살벌한 생김새에 심지어는 사는 방 모양까지 흡혈귀의 관을 닮았다. 음산한 목소리도 맞춤하다. 대배우 피터 오툴이 연기했다. 레미의 요리는 이 냉혈한마저 감동시킨다. 그 감동을 스크린에 표현하는 방식도 재미있지만, 안톤의 반성문(!)이 꽤 뭉클하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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