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李·朴측 최전방 공격수 4인의 속앓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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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 06면

이명박 캠프 진수희 대변인
"촌닭 · 푼수로 불려왔는데 살생부 오른 저격수라뇨"

무엇이 이들을 사생결단으로 몰아가나

인터넷을 통해 ‘이명박 캠프 살생부 4인’에 자신이 포함된 사실을 확인했을 때 “가슴이 철렁했다”는 고백이 나왔다. 캠프 핵심인 이재오 최고위원과 가까워 일찌감치 이 후보 측에 합류한 진수희(52) 대변인. 그는 20일 “내가 박근혜 캠프 사람들에게 이런 정도로까지 인식이 됐나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얘기를 한 사람이 김무성 의원이라는 기사 내용에 더 서운한 듯했다. 2002년 대선 때 김 의원은 미디어를 총괄했고 진 의원은 그 하부 조직에서 TV 토론 쪽을 맡아 서로 친근했다고 한다.

그는 “나를 저격수라고 규정하는 게 어색하다”고 털어놨다. 그럴 만한 게 진 의원의 연세대 재학 시절 별명은 ‘촌닭’. 대전여고 출신인 그를 친구들은 그렇게 놀렸다. 사회에선 ‘알고 보면 푼수’를 줄인 ‘알푼수’라는 별칭도 얻었다.

그랬던 그가 며칠 전 언니에게서 경고성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너무 많이 나가는 것 아닌가 걱정된다. 요즘은 늘 흥분·격앙된 모습만 보이네’. 미국 하버드대에 유학 중인 딸이 “엄마, 인터넷 댓글은 보지 마세요”라고 충고했을 정도다. 무엇이 그를 변하게 했을까. “승자가 모든 걸 차지하는 우리 정치구조가 사생결단으로 몰아간다”는 게 자가진단이다. 상대는 달려드는데 가만히 있으면 죄다 뒤집어쓰고, 대응을 하면 싸움으로 비친다는 것이다. 진 의원은 “어처구니없는 네거티브를 당하면 ‘이렇게까지 하나’ 하며 화가 난다”고 말했다.

그에게 경선이 끝나고 상대 캠프 ‘공격수’들과 화합이 가능할지 물었다. 진 의원은 “유승민 의원은 당 여의도연구소에 함께 있었고 사석에선 ‘누님’으로 부를 정도로 친했다”며 “너무 아프게 공격할 땐 얄밉기도 하지만 경선이 끝나면 옛날로 돌아갈 것 같다”고 말했다. 이혜훈 의원도 지난 대선 때 같이 일한 경험이 있다. 김재원 의원은 공교롭게도 남편(한양대 교수)과 동명이인이다. 자신은 다 털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얘기했다.

다만 경선 과정에서 너무 심한 공격을 한 사람은 상대 후보를 돕는 데 시간이 필요하리라고 내다봤다. “얼마 전까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비난하다가 갑자기 뽑아달라고 하면 자기 모순 아니냐”는 것. 그러면서도 “앞장선 몇 이외엔 당 화합 차원에서도 돕는 게 옳다”고 말했다. 비례대표인 그는 내년 총선에서 대전이나 수도권 지역구에 출마를 고려 중이다.

강주안 기자

이명박 캠프 정두언 기획본부장
"당내 중징계 당하자 축하 전화 오던데요"

“저를 아끼는 사람들은 전화해서 축하한다고 하던데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캠프의 정두언(50) 기획본부장은 이달 초 당원권 6개월 정지라는 중징계를 당했다. 당내 경선 투표권도 박탈당했다. 18일 만난 그에게 심경이 어떠냐고 물었다가 이런 뚱딴지같은 답변을 들어야 했다. 그는 박근혜 후보 캠프의 몇몇 의원에 대해 “(비방이 심해) 다음 총선에 출마가 불가능할 상황”이라고 했다가 징계를 당했다.

“제가 앞에 나서 험한 얘기를 하다 보니 적을 많이 만든다는 거죠. (징계를 당해) 이젠 못할 테니 차라리 잘됐다는 거예요.”

말은 그렇게 해도 속이 편치 않을 터였다. 가족들은 뭐라고 하는지 물었다.

“아내는 그 일이 보도되고 일주일 동안 제 눈치만 살살 보더라고요…. 뭐라고 얘기도 못하고. 가족을 불편하게 한 거죠.”

정 의원이 이 후보와 가까워진 것은 2001년 말이다. 16대 총선 낙선 후 당시 교통사고를 당해 입원해 있던 그를 이 후보가 찾아왔다. 그때까지 이 후보를 ‘학생운동을 하다가 재벌회사에 들어간 사람’ 정도로만 알고 있던 정 의원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이 후보의 저서 『신화는 없다』를 구해 읽었다. 다 읽고 나니 이 후보가 좋아지더라고 했다. 이후 정 의원은 이 후보의 서울시장 출마를 도왔고, 당선 뒤에는 정무부시장으로 일했다.

17대 총선에서 당선된 뒤에도 정 의원은 당내의 대표적인 ‘이명박 맨’으로 남았다. 대선후보 경선이 시작된 뒤에는 캠프의 최전선에서 상대 진영을 향해 독설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 그도 요즘 고뇌가 많다고 했다. “상대 당과 싸워야 하는데 같은 편끼리 싸우려니 울화병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이 대운하 공약을 공격해 이에 대응할 때는 신바람이 났을 정도”라고 말했다. “당내 싸움이 너무 길어져 양쪽 다 공약이고, 전략이고 다 노출돼 버렸다”며 “본선에서 싸울 때 되게 힘들어졌다”는 말도 했다.

정 의원은 “경선 끝나면 휴가 갈 게 아니라 승자가 패자를 다독이는 일부터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그럴 일도 없겠지만 혹시 대선 출마 기회가 주어져도 나는 절대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웃었다. 진짜 힘들긴 힘든 것 같다.

김선하 기자

박근혜 캠프 이혜훈 대변인
“열 살 막내 아들까지 옛 직장으로 돌아가라고…”

“지금껏 살면서 고소는커녕 크게 야단맞아 본 기억도 별로 없는데….”

19일 만난 한나라당 박근혜 후보 캠프의 이혜훈(43) 대변인은 한숨을 쉬었다. “엄마가 고소를 당했다니 세 아들이 많이 놀란 것 같더라”고 말했다. 검찰·경찰이 뭔지도 구분하지 못하는 막내(10)가 “엄마가 왜 경찰서에 가야 되느냐”며 “전에 다니던 직장(한국개발연구원)으로 돌아가라”고 떼를 쓰더라고 했다.

이 의원은 이 후보의 처남 김재정씨가 대주주인 ‘다스’의 부동산 관련 의혹을 제기한 주간지 보도를 언급했다가 김씨에게 고소를 당했다. 이 의원은 “처음엔 그냥 가볍게 여겼는데 점점 마음이 무거워지더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박 후보 캠프의 최전선에 서 있는 여성 의원이다. 여성 후보의 속사정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란 뜻이다.

4월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앞두고는 이런 일도 있었다. 지원 유세를 다니던 박 후보가 전남의 한 행사에서 구두를 벗고 탁자에 올라갔다. 그런데 박 후보의 스타킹에 구멍이 나 있는 것이 카메라에 잡혔다. 며칠 뒤 서울의 당원 교육 행사장에서 이 일이 화제에 올랐다. 남성 중진 의원들이 “얼마나 뛰어다녔으면 스타킹에 구멍이 다 났느냐”며 박 후보를 치켜세웠다.

민망해하는 박 후보에게 이 의원이 농담을 건넸다. “요즘 ‘댄싱 퀸’이란 별명 붙은 것 아시느냐”고 말했다. 스타킹 올이 풀린 것을 속어로 ‘댄싱 갔다’고 한다. 여성 대부분이 아는 말이다. 두 여성은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스웨덴 출신 팝그룹 ‘아바’의 히트곡 제목을 떠올린 남성 의원들은 멀뚱멀뚱 서로 쳐다만 보고 있었다.

박 후보에 대한 이해가 그만큼 깊어서일까. 이 의원은 요즘 캠프의 주 공격수로 뛰고 있다. 그는 “총대를 멜 때는 메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팀으로 일하는 것인데 나 혼자만 고고한 척할 순 없는 것 아니냐”는 말도 했다. “스스로 결정해서 온 길이니 때로는 책임도 지고, 비용도 치르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인터뷰 끝무렵 이 의원은 기어이 눈물을 보였다. 그는 “(이 후보 진영에) 개인적 감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경선에서 이기면 그분들께도 정말 예를 갖춰 끌어안을 생각”이라며 말을 맺었다.

김선하 기자

박근혜 캠프 유승민 정책메시지총괄단장
"정치판 '3D' 누군가 해야 내 이미지 신경 안 씁니다

“고소당하기는 처음이에요. 아버님을 비롯해서 집안에 판사들이 많아 어릴 때부터 재판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재판 가는 일은 안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20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유승민(49) 의원은 차분했다. 그는 이달 초 이명박 후보의 처남 김재정씨로부터 명예훼손을 이유로 형사고소와 15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당한 상태다.

원래 그의 이미지는 ‘정책 전문가’다. 경제학 박사인 그는 한나라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장을 3년 반 지냈다. 지금은 박근혜 후보 캠프의 정책메시지 총괄단장이다. 박 후보의 모든 정책과 메시지가 일단 그의 손을 거친다. 하지만 그의 ‘세련된 정책통’ 이미지는 요즘 적잖게 흠이 생겼다. 앞장서서 이명박 후보의 한반도 대운하 공약을 비판하고 이 후보의 재산 의혹을 제기하면서다. 그도 그것을 안다. 그는 “12월 대선까지는 내 이미지에 신경쓸 생각이 없다. 내 장사는 안 한다”고 말했다. 단호했다. 이유를 묻자 “대선 승리가 중요하니까”라고 답했다. 이어 “정치판의 3D(더럽고, 어렵고, 위험한) 업종도 누군가는 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반문했다. 그의 말마따나 검증의 화살을 쏘는 일은 3D다.

올 초 그는 맨 먼저 ‘후보 검증’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는 “당이 검증위를 만들고 검증청문회까지 하게 된 데는 내 책임이 크다”고 말했다. 그에게 요즘 주로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박 후보가 경선에서 돼야 한다는 생각만 한다. 이 후보로는 본선에서 이기기 힘드니까”라고 대답했다. 일종의 확신인 셈이다.

그는 2002년 대선 때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측근이었다. 대선 다음날 이 후보의 정계 은퇴 기자회견문은 그가 쓴 것이었다. 그는 전날 밤을 꼬박 새웠다. 울기도 많이 울었다. 선거에서 지자 세상 인심과 당내 권력지도가 순식간에 달라졌다. 그에게도 비난이 쏟아졌다. 그때 ‘다음에 또 이런 일을 하게 되면 후회 없이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가 검증의 선두에 서고, 박 후보 본인이 듣기 거북한 말까지 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한편 그가 이 후보 캠프의 집중 공격을 받으면서 가족들 근심은 커졌다. 그는 천천히 말했다.

“어머니는 나 대신 아내를 붙잡고 걱정한다. 아내는 만날 불안하게 생각하면서도 내색은 잘 안 한다. 내가 싫어하니까. 그래서 더 미안하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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