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한글자판 나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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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중국에 있는 미국 성공회 소속 교포인 안마태(73·사진) 신부는 성직자보다는 한글 자판 연구가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그가 중국어를 한글로 입력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3일부터 6일까지 옌지(延吉)에서 열린 ‘다종언어 정보처리 국제학술대회’에서 시연해 큰 관심을 끌었다. 시연회가 끝나고 그를 만났다.

◆한글로 중국어 입력=“중국의 문자인 한자는 컴퓨터와는 극히 어울리지 않는 문자입니다. 수만 자가 넘는 한자를 컴퓨터 자판에 다 올려놓을 수 없잖아요. 글자를 한글처럼 분해할 수도 없고요. 한글로 중국어 발음만 입력하면 한자로 변환되도록 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개발한 ‘안음(安音) 3. 0’ 프로그램의 장점을 이같이 말했다. 등소평(鄧小平)을 예로 들어보자. 등소평의 중국 발음인 ‘덩샤오핑’을 한글 자판으로 입력하면 화면에는 ‘鄧小平’이라는 한자가 나타난다.

한글로 표기할 수 없는 소리는 거의 없다. 유엔에서도 문자가 없는 소수민족의 언어를 채록하는 데 한글을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

안 신부도 한글의 그런 우수한 특성을 중국어 입력에 활용한 것이다. 그의 시연을 지켜본 중국 내 11개 소수민족 학자와 중국 학자들이 감탄하는 모습은 보기 좋았다.

중국은 컴퓨터로 한문을 입력할 때 중국어 발음 기호로 영어 알파벳을 쓴다. 자판에서 ‘beijing’을 치면 ‘北京(베이징)’이라는 한자가 나타나도록 하고 있다.

프로그램에 들어 있는 중국어 단어는 무려 4만5000개에 이른다. 낱자가 아닌 단어로 접근한 게 이번 프로그램의 특징이다. 한자는 소리는 같아도 뜻이 다른게 너무 많아 영어 알파벳으로는 원하는 한자를 찾느라 시간이 많이 걸리는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중국 단둥(丹東)과 베이징 등 여러 곳에서 시연을 했을 때 많은 사람이 정확한 음가를 기록할 수 있는 한글 입력 방식에 놀라곤 했습니다.”

그의 입력 프로그램은 세벌식이다. 한국의 표준 자판처럼 자음과 모음을 차례로 입력하는 게 아니다. ‘박’이라고 하면 ‘ㅂ ㅏ ㄱ’ 등 세 자판을 동시에 누르는 것이다. 피아노 건반을 동시에 누르는 것과 비슷하다. 자판 배열은 자음을 왼쪽에, 모음을 오른쪽에, 받침은 아래쪽에 했다. 두 손을 골고루 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렇게 하면 입력 속도가 기존 한글 입력 방식에 비해 두 배 이상 빨라진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의 고민은 이 프로그램을 보급하기 위해 중국인에게 한글의 음가를 가르치는 거다. 중국 정부 또는 소수민족 학자들과 협력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노동운동가 출신=안 신부는 1966년 성직자가 됐다. 성직자들과 도시산업선교회를 조직해 노동운동을 하다 군사 정권의 박해를 받기도 했다는 것이다. 결국 그가 택한 것은 미국행이었다. 미국에서 77년 ‘뉴 라이프’라는 한글 월간지를 발간한 게 한글 자판 연구에 매달린 계기가 됐다.

“납 활자 시대여서 인쇄에 애를 먹었습니다. 미제 사진 식자기를 사다 활자 부분을 한글로 갈아끼웠으나 자판이 잘 안 맞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한글 자판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안 신부는 미국에서도 많이 활동했던 공병우 박사와 한글 자판 개발을 함께하기도 했다. 그의 애초 관심사는 세벌식 자판이었다.

“세벌식 자판을 개발해 한국에 들어왔으나 한국 정부에서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기가 나 그 성능을 입증해 보이려고 중국어 입력에 활용하기로 한 것이 중국어 입력 한글 프로그램 개발 계기였습니다.”

그는 94년 단둥에 ‘단둥안마태계산기개발공사’를 차려 놓고 북한 조선컴퓨터센터와 협력해 프로그램 개발에 나섰다. 그 이후 11년 만인 2005년 ‘안음 1. 0’을 내놨다. 그 속에는 중국어 1만3000단어가 들어 있었다. 이를 각급 연구소와 주변 학교에 무료로 나눠줬다. 그 후속이 이번 작품이다.

단둥시에서는 직업학교에서 그의 입력 방식을 쓰겠다며 도움을 요청했고, 일본의 한 업체는 저작권을 팔라는 제안도 했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중국 내 컴퓨터와 휴대전화 등 정보화 기기의 자판이 한글로 바뀌고, 한글로 중국인들이 자국어를 입력하는 세상을 꿈꾸고 있다.

작가 이기열씨(대표작 장편소설 『천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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