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에 만파… 청와대 고심/연일 회의열며 대응책 숙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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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김 대통령 박 보사건에 격노… “처신 잘하라”/박 보사 “투기보도 과장” 장관직 계속 희망
박희태 법무장관의 딸 대학편법입학과 김상철 전 서울시장의 그린벨트 훼손 파문에 이어 박양실 보사부장관의 부동산투기 의혹이 제기되자 김영삼대통령 정부에 비상이 걸렸다.
정부는 이에 따라 국무위원 전원을 포함한 고위공직자들에 대한 「뒷조사」에 착수하는 등 근본적인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청와대는 5일 밤 박양실보사부장관 추문과 관련한 보도가 일제히 터져 나오자 박관용 비서실장 주재로 긴급 수석비서관 회의를 열어 대책을 논의했다. 주돈식정무 김영수 민정수석 등이 참석한 이 회의는 박 장관과 관련된 소문의 사실확인과 함께 경질여부를 김영삼대통령에게 건의할 것인지 여부를 집중 토의한 끝에 우선 박 장관에게 6일중 직접 해명할 기회를 준뒤 경질여부를 결정키로 결론을 내렸다.
참석자들은 박 장관과 관련된 소문들이 부분적으로 사실이라면 국민정서에 비춰 경질이 불가피하지만 보도내용과 박 장관의 주장이 다르고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사람을 바꾸다가는 배겨날 공직자가 있겠느냐』는 우려를 제기했다.
이들은 박 장관 경질 자체는 덜 중요한 사항이며 그런 식의 대처가 문제해결의 근본방안이 될 수 없다는데 더 고민했다.
박 장관은 청와대측에 제출한 자료에서 『언론에서 수백억원대로 지적한 빌딩은 공시지가 기준으로 60억원이며 근저당 부분을 제외하면 30억원 정도』라고 해명. 그러나 청와대측은 박 장관의 해명에 대한 실사를 해볼 필요가 있다는 반응이어서 박 장관의 소명자료를 별로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
청와대측은 박 장관의 김포땅과 관련,금액이나 선산여부와 무관하게 구입과정에서 위장전입 등 불법행위를 저지른데는 할 말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재산이외의 「비리」가 국민감정을 더욱 자극할지 모른다는데 의견일치를 보았다.
박 실장은 이같은 회의결과를 이날 오후 11시 김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김 대통령은 5일 밤 청와대 본관에서 박 보사관련의 텔리비전 9시뉴스를 지켜본뒤 관저로 돌아와 다시 석간 3판과 조간신문을 「정독」했다는 후문. 김 대통령은 이들 신문에도 박 장관의 비위들이 자세히 열거돼 있는 것을 확인한뒤 상당히 격노했다는 것이다. 대통령측근들은 대통령의 표정이나 불편한 심기로 봐 박 장관의 경질이 곧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김 대통령은 6일 오전 국무회의에서 특사에 관한 안건이 가결된후 사면에 즈음한 대국민 당부에 이어 공지자들의 깨끗한 자세를 다시 한번 강조.
김 대통령은 『서울시장 사건은 값진 교훈』이었다면서 『이는 공인이 처신과 주변정리를 잘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음을 깨우쳐주는 것』이라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김 대통령이 굳은 표정으로 공직자 자세에 대한 말을 꺼내자 회의초반부터 움츠러들어 있던 박양실 보사장관은 아예 고개를 파묻고 지시를 경청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최근의 잇단 인사잡음이 김 대통령이 직감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사정현실」때문이라고 설명. 김 대통령은 취임전 고위사정책임자로부터 『사정요원들이 자신들의 기호에 따라 자료를 왜곡시켰기 때문에 문제가 너무 많다』는 조언을 받았으며 이에 따라 정밀검토를 실시한 결과 사실로 확인됐다는 것.
즉 자료의 많은 부분이 작성자의 자의가 작용해 기피인물에 대해서는 「○월○일○시에 방뇨를 했다」는 사실까지 기록돼 있는가 하면 축재·여자문제가 엄청난 인사가 청빈한 인물로 둔갑되어 있더라는 것이다.
김 대통령은 이 때문에 기존의 신상자료를 불신하게 됐고 자신이 직접 후보자를 면담,기용여부 등을 결정했는데 이 과정에서 재산·과거비리 등을 일일이 챙기지 못한게 오늘의 분란을 초래했다는 설명이다.
○…박 보사장관은 이날 오전 청와대 기자실에 나타나 진퇴여부에 대해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뜻을 따르겠다』면서도 『나의 해명을 여러분들이 잘 보도해주어 국민이 납득하고 대통령이 다시 나를 신임해 주면 나는 이번 장관임명을 국가를 위한 최후의 봉사라는 자세로 일하겠다』며 유임을 희망.
그러나 한 고위관계자는 『박 장관의 해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김 대통령은 사실관계를 정확히 확인해 최종 결정할 것』이라며 해임을 기정사실화.
박 장관은 자신의 재산규모와 부동산취득 경위를 자세히 설명하면서 신문보도가 과장되고 왜곡되었다고 말했다.
박 장관은 『이번에 재산공개를 위해 조사해본 결과 국세청·내무부 고시가로 평가한 내재산규모는 저동빌딩(38억원),아파트·땅 등 60억원 정도며 부채(전세권 설정액) 25억원을 빼면 35억원』이라고 주장.
박 장관은 큰아들(30)명의로 86년에 구입한 김포군 절대농지에 대해선 『주민등록을 옮기자면 일이 너무 복잡해 아들 이름으로 샀다』며 『이런 일이 죄가 되는지는 몰랐다』고 해명했다.
박 장관은 『나는 땅을 샀다 팔았다 하거나 복덕방업자를 따라 땅 구경을 다닌 적이 없으니 투기꾼이라는 말은 억울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박 장관은 거창땅 3천5백여평에 대해 『이번에 알아보니 평당 3백원밖에 안돼 총액이 1백만원에 불과하다』며 『어리석은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김현일·김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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