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불안 심상치 않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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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가파른 물가오름세에 대한 불안은 이미 주부들의 가계부에서부터 나타나고 있다. 작년 한햇동안 4%대로 안정되었던 소비자물가가 올들어 두달새에 벌써 1.5%나 올랐다. 실제 주부들이 장바구니를 들고 시장에 들어서면서 느끼는 체감물가는 이런 통계치보다도 훨씬 높다. 쌀 등 주곡가격은 거의 변동이 없고 수출길이 막혀 값이 떨어진 사과와 귤 등은 도시의 동네 어귀마다 덤핑 판매되고 있는데도 소비자물가는 꺾이지 않고있다.
올들어 나타난 물가불안의 주범은 작년 하반기와 금년에 줄줄이 인상되었던 공공요금이다. 버스요금과 지하철·철도·공중전화요금 등이 차례로 올라 전체 물가를 크게 자극했다. 공공요금 인상이 가져오게 될 서민생활의 압박은 이미 예상되었던 일이다. 정부가 한꺼번에 공공요금을 올릴 경우 가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그에 따른 기타 서비스가격의 편승인상이 나타나리란 우려가 현실화된 것이다.
공공요금은 공익기업이 생산하는 재화나 서비스 가격으로 국민생활의 기본수요에 직결되는만큼 가장 합리적인 선에서 인상요인의 일부를 현실화하지 않을 수 없는 어려움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작년에 물가지수의 「안정권」을 더 중요시 했다. 시장을 무시하고 물리적으로 가격인상을 억제해오다 올해들어서야 이를 한꺼번에 인상했다. 그 충격이 가계를 위협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은 당연하다. 그동안 정부의 지나친 물가지수에의 집착이 오히려 사회 간접시설 투자를 지연시키는데 영향을 주었다는 중요한 정책분석이 물가정책에서는 거의 무시되고 있다. 어떤 정권도 인플레를 선도했다는 이미지를 남기지 않으려는데서 무리한 가격정책을 낳고있다.
따라서 우리는 독점성과 필수성이라는 사업의 특수성을 지닌 공익기업의 요금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책정하고 인상요인을 어느 시기에 소비자에게 적절히 나눠 부담시킬 것인가 하는 정책판단을 잘해야 한다. 물론 공공요금을 가급적 낮추기 위해서는 공기업의 비효율적인 경영을 과감히 개선해야 하는건 말할 것도 없다. 올해의 물가불안은 앞으로 새 정부가 취할 이른바 경기활성화 정책의 향방에 따른 큰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지나치게 성장을 의식한 부양책일 경우 인플레의 가능성은 증대된다. 너무 성급한 경기대책은 산업경쟁력 강화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행정당국은 공공요금 인상을 이유로 덩달아 각종 요금을 올려받고 있는 서비스업체에 대한 행정지도와 세무조사를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영수증 거래 없이 상품을 매매하는 일부 판매상들의 가격인상 책동을 사전에 봉쇄할 수 있는 행정단속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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