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정계는 왜 말이 없나(송진혁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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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곧 엄청난 개혁바람이 불것 같다. 김영삼대통령이 앞장서는 대대적인 부정부패 척결작업이 임박한 분위기다. 김 대통령의 기세를 보면 단순히 과거 정권의 서정쇄신이나 사회정화처럼 끝날 것 같지 않다는 예감이 든다. 김 대통령이 마치 유세라도 하듯 취임식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성역없는 척결」을 부르짖은 것이나 첫 국무회의 발언,3·1절 기념사의 내용 등을 보고는 「무섭다,조심합시다」는 수군거림이 공직사회에서 나온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관청마다 개혁바람
뿐인가. 신임 이회창감사원장도 벌써 공직사회의 공포의 대상이라고 한다. 「청와대도 감사할 사람」이란 평을 듣는 이 원장의 그 강직한 성품으로 보거나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취임사를 보더라도 감사원 활동도 심상치 않을 것이 분명하다.
분위기가 이쯤되니 아직 김 대통령의 개혁보따리가 끌러지지도 않았는데 벌써 알아서 기는 개혁운동이 관청마다 일고 있다. 검찰은 대대적인 공직자 부패수사에 나설 방침이고 안기부·경찰·정부 각부처 할것 없이 모두 새모습·새자세·자기혁신에 바쁘다.
이처럼 불과 며칠사이에 개혁풍이 상층부를 거세게 몰아치는데 유독 잠잠하고 말이 없는 곳이 정계다. 과문한 탓인지 정계에서는 아직 정치개혁이나 부패추방에 관한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 정계에서 바람이 분다면 그것은 개혁풍이 아니라 「요직풍」이다. 민자당은 지시를 받고서야 개혁을 할 작정인지 모르나 당직개편을 싸고 물밑경쟁과 신경전에 바쁘고,당권경쟁을 벌이고 있는 민주당은 「김심」 「무심」하면서 『일찍이 이런 혼탁한 전당대회는 본 일이 없다』는 당대표의 자탄까지 나오는 판이다.
그렇다면 정계는 척결해야 할 부패도 없고 개혁해야 할 부조리도 없는 것인가.
이미 수많은 수람이 입이 아프게 지적·강조한 것이 다름아닌 『개혁을 하자면 먼저 정치개혁부터 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거액의 정치자금이 들어가는 정당·선거제도와 지금의 정치행태를 그대로 두고는 진정한 개혁이 불가능함은 이미 상식이 되고 있다.
정치권의 컴컴한 거액의 수요가 곧 정경유착­공직부패­기업부패로 연결됨을 누가 모르는가. 당선에도 돈,정치활동에도 돈,정치세력화에도 돈이요,그렇게 형성된 정치세력이 공직을 잡고 그 공직이 권력으로 돈을 만들고 그 아래로 부패가 계열화하고…. 대충 이런 도식으로 우리는 지내오지 않았는가.
○정치개혁이 최우선
누구는 몇천억,또 누구는 몇천억 치부했다는 따위의 항간의 유언을 옮기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지만 몇달전의 50억 수수설만 해도 국회의원이 관련된 문제인데도 윤리위까지 둔 국회 스스로 알아볼 생각도 않고 있다. 국민을 지도하고,모범을 보이고,기강을 잡을 사람들의 뒤에 이런 부패구조가 있는한 무슨 지도를 하며 무슨 기강을 잡겠는가.
지금 정계에서 경조사에 꽃도,봉투도 안보내고 가장 돈을 적게 쓴다고 하는 야당의 「깨끗한 정치모임」 의원들도 월평균 1천만원은 필요하고 수백만원씩 빚을 진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야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작년봄,그때까지만 해도 돈 잘쓰던 당수가 소속의원들에게 쏘나타 승용차를 한대씩 주마고 했더니 의원체통이 있는데 쏘나타가 뭐냐,그랜저를 달라고 해서 옥신각신이 벌어졌다는 얘기가 보도된 적이 있었다.
월수천만원은 써야 하고 체통때문에 그랜저를 타야 하며,공개되는 것도 아닌 재산등록을 이 핑계 저 핑계로 기피하는 사람들이 활보하는 것이 우리 정계다.
흔히 말하는 정치력이 무엇인가. 술 잘사고,뒷돈 잘대고,인사청탁·이권부탁 잘 소화해주고,그래서 「꼬붕」 많이 거느리고 상대방을 잘 끌어들이는,대충 이런 능력을 요즘 정치력이라고 하는 것은 아닌가. 원래 뜻대로라면 더 탁견을 내고,국민지지를 더 많이 받고,상대방을 더 잘 설득하는 그런 능력이 정치력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진짜 정치력보다는 부패에 의한 돈을 바탕으로 하는 타락한 정치력이 더 득세하고 있다.
이런 정치구조·정치행태·풍토를 그대로 두고는 개혁도 부패척결도 「도로아미타불」이 될 것은 뻔한 일이다. 만일 김 대통령이 진정한 개혁을 하자면,정말 시대를 바꾸자면 정치개혁부터 하지 않으면 안된다.
○정치­돈관계 정립을
곧 사정기관을 총동원한 범정부 사정활동을 벌인다는데 돈먹은 공무원,규정어긴 공직자 수십명·수백명을 적발해 처벌하는 것은 역대 정권이 다 해온 일이다. 먼저 사정할 사람의 정당성부터 확보하는 일이 급하다. 사정할 사람이 누군가. 사정계획을 협의하고 대상범위를 정하고 결재도장을 찍을 사람들,곧 정부요직·당요직을 포함한 정치지도층이 그들이다. 이들이 뒤로 컴컴한 요소를 타고앉아 있는한 공직사회를 아무리 호령해봐야 소용이 없다. 정치와 돈의 관계부터 바로잡아야 하는 것이다.
정작 정치권을 보면 답답하기 짝이 없다. 스스로 개혁하지 않으면 개혁당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앉아서 개혁당하기 전에 자기변신의 몸부림을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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