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 간 무속 수난사 엮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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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무당이 무당 특유의 한과 신명으로 대하소설을 펴내고 있다. 세습무로서 군산용왕굿 기능보유자인 정강우씨는 일제말기부터 제3공화국까지를 시대적 배경으로 무당이 받아온 수난의 역사를 『무당』 3부작으로 펴내기로 하고 최근 제1부 『몸 짓은 하늘을 열고 소리 짓은 혼을 열고』(현암사 간)를 냈다.
독립군 딸로서 무당이 된 순녀의 평생을 다루며 전개되는 소설의 줄기는 무당의 본업을 밝히면서 일제이후 외세문화의 유입과 정치적·사회적 혼란으로 우리 고유정신이 소외되며 함께 사라져간 무속의 수난사를 파헤치고 있다. 그러면서 작가는 무당의 수난이 무당이라는 사회한 계층의 파멸을 의미하지 않고 우리민족 주체와 문화의 파멸을 상징적으로 작품 곳곳에 드러내며 민족의 뿌리와 정기를 환기시키고 있다.
소설의 이 같은 기둥줄거리·주제와 함께 정씨는 작품 속에 「칠성풀이」 「성주풀이」「초혼가」 「액풀이」등 어렵사리 굿판에서나 들을 수 있는 무당의 「잊혀져 가는 소리」들을 그대로 집어넣고 있다.
무당이 그 원조로 섬기고 있는 바리공주 이야기가 우리 서사문학 양식의 시원이란 설이 있을 정도로 무당의 소리들은 그 자체로서도 완벽한 서사구조를 지니고 있다.
소설 『무당』은 이러한 무당의 소리 원문과 정씨 특유의 재담과 입담이 어울린 대사와 지문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로서의 소설을 이루고 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듯한 현대형의 상황묘사, 교양 있는 표준말 정책에 의해 밀려난 욕지거리·의성어·의태어 등 민중생활언어의 과감한 도입 등으로 이 작품은 활자로 박힌 것이 아니라 귀와 감정에서 팔딱팔딱 뛰논다.
1949년 전북 금제에서 태어난 정씨는 9세 때 세습무 집안의 수양아들로 들어가 전라도 굿 18거리를 배워 무당이 된다. 걸진 재담과 신들린 춤사위로 수많은 굿 판을 벌이던 정씨는 새마을운동에 의해 결정적 타격을 받아 재인이나 점쟁이로 전락한 70년대, 그 무당의 뿌리를 찾아 전국을 떠돌다 이제 소설 집필에 들어갔다. 작가의 육성으로 직접 담은 무당의 소리 테이프 2개도 소설 1부작 부록으로 집어넣었다. <이경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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